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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인생을 가른다

길을 걷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참 많다는 것을. 그 중에서도 '기준 중위소득 32%'라는 선은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턱이 된다. 2026년, 이 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오랫동안 복지 현장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주민센터 복지과 창구 너머로 만난 수많은 얼굴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선생님,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떨리는 목소리 속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생계급여, 단순한 돈 이상의 것

생계급여를 설명할 때마다 나는 조심스러워진다. 2인 가구 기준 월 134만 3,000원. 이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한 달을 버티는 전부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소득인정액이라는 개념이 있다. 단순히 버는 돈만 보는 게 아니라, 가진 재산까지 환산해서 계산한다. 보증금 3,000만 원짜리 월세방에 사는 65세 노부부를 상상해보자. 국민연금 25만 원, 근로소득 30만 원. 13년 된 모닝 한 대. 이들의 소득인정액은 약 32만 7,000원으로 산정된다.

그렇다면 생계급여는? 134만 3,000원에서 32만 7,000원을 뺀 101만 6,000원. 이것이 이들이 받게 될 생계급여액이다. 계산은 냉정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삶이 담겨 있다.

의료급여가 건네는 안도

의료급여 대상이 된다는 것. 중위소득 40% 이하 가구에게 주어지는 이 혜택은 단순한 의료비 지원을 넘어선다. 병원 문턱이 낮아진다는 것은 곧 삶의 문턱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아픈데 참는 노인들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괜찮아요, 조금 아픈 정도예요." 그들의 '괜찮다'는 말 뒤에는 병원비 걱정이 숨어 있었다. 의료급여 1종을 받으면 본인 부담이 거의 없다. 입원도, 외래도, 약값도. 이것이 얼마나 큰 안도감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주거급여, 집이라는 안식처

주거급여는 참 복잡하다. 지역별 기준 임대료 상한선이 있고, 보증금 환산액이 있고, 실제 월세와 비교해서 적은 금액으로 지급된다. 월세 45만 원에 보증금 3,000만 원인 집. 주거급여는 약 41만 원 정도가 나온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이 지원금이 '집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일. 그보다 참담한 일이 또 있을까. 주거급여는 그 참담함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방패다.

소득인정액이라는 미로

복지 제도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소득인정액 계산. 근로소득이 있으면 공제가 들어간다. 65세 이상은 20만 원을 우선 빼고, 나머지의 30%를 추가로 공제한다. 재산은? 자동차는? 보증금은?

 

 

13년 된 모닝 같은 노후차량은 환산액이 대폭 완화된다. 약 7,000원 정도만 반영된다. 이런 세세한 기준들이 모여 한 가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힘들어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 푼 차이로 탈락하는 사람들을 볼 때의 그 무력감. 나는 그들의 고충을 안다.

기초연금, 축복인가 저주인가

"기초연금 받으면 생계급여 깎인다던데, 안 받는 게 나은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 답은 간단하지 않다. 기초연금을 받으면 소득인정액이 올라가고, 그만큼 생계급여가 줄어든다. 단기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다르다. 기초연금은 평생 지급되는 안정적 소득이다. 생계급여는 매년 재산과 소득을 조사받아야 한다. 상황이 조금만 나아지면 탈락할 수 있다.

나는 항상 이렇게 조언한다. "두 가지 다 신청하세요. 그리고 복지 담당자와 상담하세요. 당신의 상황에 맞는 최선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혜택들

전기요금 감면, 도시가스 바우처, TV 수신료 면제, 정부 양곡 할인, 지방세 감면. 이런 부가혜택들을 다 합치면 연간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은 절약된다고 한다.

나는 이 '부가'라는 말이 싫다. 이들에게는 부가가 아니라 필수다. 겨울나기 난방비 40만 원 바우처. 이게 있고 없고가 얼마나 큰 차이인지. 1월 한파가 몰아칠 때 보일러를 틀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2026년,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2026년 기준 중위소득이 올랐다. 덩달아 수급 기준선도 올랐다. 더 많은 사람이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2%,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는 48%, 교육급여는 50%.

숫자는 변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 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는 것. 101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주민센터로 가는 길

"선생님, 저 같은 사람도 받을 수 있을까요?"

창피해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다. 기초생활수급은 게으른 사람이 받는 시혜가 아니다. 이 사회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안전망이다.

소득이 낮거나 월세 부담이 크거나 의료비 걱정이 크다면, 주저하지 말고 주민센터 복지과를 찾아가시라. 복지 상담은 권리다. 당신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확인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생각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결국 인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중위소득 몇 퍼센트, 소득인정액 몇 만 원, 이런 숫자들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2026년을 사는 우리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허점도 많고 불합리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 해마다 기준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도 해당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주저하지 말고 문을 두드리시길. 그 문 안에는 당신이 받을 수 있는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가 기다리고 있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당당하게 누리시라.


이 글은 2026년 기준 중위소득 및 선정기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상황에 따라 실제 지급액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확한 상담은 거주지 주민센터 복지과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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