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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는 시인들을 그린 세 번째 그림
주문을 받으면서 한 번 더 같은 벽면에 마주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뻐했을 듯싶다. 한가운데 창문이 난 이 좁은 평면은 당연히 새로운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라파엘로는 창문 위쪽에 언덕을 만들었다. 생생한 파르나소스의 언덕이 되는데, 그 결과 앞쪽에 두 개의 공간과 위쪽에 더 넓은 무대가 마련되었다. 이것은 아폴론이 뮤즈들과 함께 앉아 있는 장소이다. 호메로스도 그곳에 머물고 있으며 배경에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모습도 보인다. 나머지 시인들은 언덕 기슭에 몰려 있다. 혼자 걷는 모습으로, 혹은 느슨한 대화를 주고받거나 활기찬 이야기꾼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곳에서는 여럿이 그룹을 이루고 있다.
시작(詩作)이란 협동 작업이 아니므로
하나의 그룹화에서 시인들을 심리적으로 특성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라파엘로는 영감의 표현을 두 번으로 한정시켰다. 황홀경에 잠겨 위를 바라보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폴론 신과 열광적으로 혼자 중얼거리면서 멀어버린 눈길로 역시 위를 바라보는 호메로스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예술의 경제는 나머지 그룹들의 흥분을 줄이는 데 있다. 성스러운 광기는 신 가까운 곳에만 있을 뿐이고 아래쪽에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도 역시 특정 인물의 이름을 찾아낼 필요가 없다. 사포(Sappho)만 이름이 표시되어서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어 대체 이 여자가 누군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라파엘로는 사포와 대립하는 여성 인물을 만들려고 했다. 단테는 작고도 거의 부수적인 존재처럼 옆으로 밀려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들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중에서 두 인물이 우리 눈을 들여다본다. 그림 가장 오른쪽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산나차로(Jacopo Sannazaro, 1456~1530, 이탈리아 시인)인 듯하다.
라파엘로가 자신의 자화상과 같은 태도를 준 또 다른 인물은 신분이 확인되지 않는다.
아폴론과 그의 양편에 두 뮤즈가 앉아 있다. 아폴론은 정면 모습이고 뮤즈들은 옆모습이다. 그것은 넓은 삼각형을 이루면서 전체 구성의 중심이 된다. 이 사슬은 오른쪽의 위풍당당한 뒷모습에서 일단 마무리 짓고 다른 편으로는 호메로스의 정면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이 두 인물은 파르나소스 모임의 양쪽 기둥이다. 큼직하게 구성된 이 그룹은 호메로스의 발치에 앉아서 철필을 쥐고 그의 말을 경청하는 소년에서 완전히 끝난다.
이 구성은 반대편에서 예기치 않은 변화를 보이는데, 그룹이 완전히 끝나지 않고 아래쪽으로 흐르면서 연결되기 때문이다. 뒷모습의 여자 바로 옆에 있는 남자는 3/4 프로필, 다시 말해 '돌아간 옆모습'을 보인다. 그는 언덕 저편을 딛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언덕 뒤쪽에 서 있는 월계 나무의 기둥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그림에서 나무들의 배치를 바라보면 그들의 위치가 얼마나 세심하게 계산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구성 안에 대각선의 흐름을 도입하면서 경직된 좌우대칭 질서를 해소하고 있다. 가운데 있는 나무들이 없었다면 아폴론은 자신의 뮤즈들 속에 파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앞쪽에 있는 그룹들에게는 상호 대립이 나타난다. 왼쪽의 그룹은 나무를 핵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반면, 오른쪽은 위쪽에 있는 인물들과 연결성을 보인다.
이것은 <아테네 학당>과 같은 움직임의 선이다.
파르나소스는 다른 그림들보다 공간의 아름다움이 적다. 좁은 산 위에 사람들이 비좁게 몰려 있고 인물 모티프는 소수만이 설득력을 가진다.
어느 정도 사소한 것에 의해 너무 많은 것이 망가졌다. 가장 실패한 인물은 뮤즈들이다. 고대풍의 작은 기교로도 흥미로워지지 못한 공허한 모습들이다. 앉아 있는 뮤즈 하나는 <아리아드네>의 옷 주름을 모방한 것이고, 다른 한 명은 고대 조각 가운데 이른바 <바르베리니의 도움을 청하는 여자>의 동작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모티프인 어깨 고대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다만 라파엘로가 어깨를 더욱 생동하는 모습으로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어깨의 둥근 형태에도 불구하고 보티첼리의 <봄> 구석에 서 있는 세 명의 우미의 여신들을 그리움으로 돌아보게 된다.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눈에 띈다. 뒷모습으로 서 있는 극히 소박한 인물들이 가장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흥미로운 동작을 보이려는 의도가 얼마나 끔찍한 창안을 만들어냈는가는 약간 몸을 돌린 사포가 보여준다. 여기서 라파엘로는 현재의 방향을 완전히 놓치고 미켈란젤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와의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시스티나 천장화의 시빌라 하나를 이 불행한 여류 시인과 나란히 놓아보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또 다른 대담한 조작은 앞쪽을 가리키는 남자의 강력하게 줄어든 팔이다. 이런 문제는 당시 누구든 해결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이미 '태양을 만드심'에 나타난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보여주었다. 이 그림의 공간 계산에 나타나는 특성을 말해야겠다. 사포와 맞은편에 있는 그녀의 상대방이 창문의 틀과 겹치는 것이 눈에 띈다. 그 결과 인물들이 이 평면을 벗어난 듯하게 보여 불쾌한 효과를 낸다. 라파엘로가 어떻게 이런 조잡함을 받아들였는지 상상할 수 없다. 실제로 그는 전혀 반대로 계산하였다. 그는 원근법적으로 그려진 아치로 그림을 둘러싸면 창문이 그림의 뒤쪽으로 물러나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계산착오였고, 라파엘로는 뒷날 다시는 이 같은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 이후의 동판화가들은 유일하게 공간을 설명해주는 바깥쪽들을 없앰으로써 이런 잘못을 오히려 더욱 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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