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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맞은편에서 세속의 학문인 철학을 찾아낼 수 있다.
이 그림은 <아테네 학당>이라고 부르지만 이 제목은 <성체 논쟁>만큼이나 멋대로 갖다 붙인 이름이다. 굳이 원한다면 차라리 이 그림을 두고 '논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심 모티프가 논쟁하는 철학계의 두 거장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처에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소크라테스가 있다. 그는 질문 놀이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전제들을 헤아린다. 그다음으로는 욕망 없는 사람의 의상을 입은 디오게네스가 계단에 누워 있다. 음표가 새겨진 판을 앞에 놓고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나이 든 사람은 아마 피타고라스일 것이다.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와 조로아스터 등의 천문학자들, 기하학의 유클리드를 덧붙이면 이 그림의 역사적 소재는 다 알아본 것이다.
구성의 난점은 이 그림에서 더 커지는데, 천상의 그룹이 없기 때문이다. 라파엘로는 건축물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는 거대한 홀을 갖춘 건축물을 세우고 그 앞에 매우 높은 계단 네 개를 만들었다. 이 계단들은 그림 전체의 넓이로 펼쳐져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계단 아래쪽 공간과 저 위쪽의 무대 등 이중의 무대를 얻었다.
모든 부분이 중앙으로 향하는 <성체 논쟁>과는 대조적으로 개별 그룹 단위와 개별 인물들로 나뉜다. 분야가 많은 학문 연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특별한 역사적 암시를 찾는 것도 별 소득이 없다. 물리적 학문들(자연과학)은 아래쪽에 자리 잡고, 위쪽은 사변적인 사상가들에게 주어졌다는 설명은 사정을 분명하게 밝혀주지만 어쩌면 이런 해석도 벌써 목
적을 넘어선 것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의 신체적·정신적 모티프들은 <성체 논쟁>보다 훨씬 더 풍부하다. 소재 자체가 더 큰 다양성을 가진 것이지만, 라파엘로 자신이 훨씬 더 발전하고 내면적으로 풍부해졌다는 사실도 알아볼 수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더욱 날카롭게 특성화되어 있다. 몸짓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인물들을 머릿속에 더 잘 간직할 수 있다.
특히 라파엘로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룹으로 만들어낸 것이 주목할 만하다. 주제는 이미 오래된 것이다. 비교를 원한다면 피렌체 종탑에 있는 루카 델라 로비아의 철학자 부조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두 이탈리아 사람이 남방의 활력을 가지고 서로에게 달려든다. 한쪽은 자기 책에 적혀 있는 말을 고집하고 다른 쪽은 열 손가락을 다 이용해서 그것이 헛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산 로렌초에 있는 도나텔로의 청동문에서 다른 논쟁들을 볼 수 있다. 다만 라파엘로는 이 모든 모티프들을 물리쳤다. 16세기의 취향은 몸짓의 억제였다. 철학계의 거물들은 고귀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다. 한쪽은 팔을 뻗쳐 손바닥을 땅바닥과 나란히 납작하게 펼치고 있는데, 그가 '건축가 같은' 남자 아리스토텔레스다.
다른 쪽은 플라톤으로서 손가락을 들어 올려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어떻게 해서 라파엘로가 두 철학자의 대립적인 개성을 이렇게 특성화해서 그럴싸하게 보여주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오른쪽 가장자리 근처에 서 있는 인물들도 아주 인상적이다. 망토를 휘감고 있는 흰 수염의 고독한 사람은 전체 윤곽이 아주 단순하고 대단히 조용한 모습이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벽 장식에 몸을 앞쪽으로 기대고 글씨를 쓰는 소년을 바라보고 있다. 소년은 고개를 숙이고 발을 꼬고 앉은 모습이 아주 정면으로 잡혀 있다. 화가의 발전을 측정하려면 이런 종류의 인물들을 잡아야 한다.
디오게네스의 누운 자세 모티프는 아주 새롭다. 층계에 편안하게 몸을 기댄 거지다.
이제 풍요로움은 점점 더 커진다. 기하학 도면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것을 파악하는 다양한 단계를 보여준다는 심리학적인 의미에서 대단히 뛰어나게 고안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별 인물들의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의 신체 동작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그것은 정확하게 습득하고 기억에 새겨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그룹은 더 흥미롭다. 낮게 앉아서 걸상에 한 발을 올려놓고 글씨를 쓰는 사람의 옆모습, 그의 뒤에서 다른 인물들이 몸을 앞으로 굽히고 혹은 어깨너머로 굽어보고 있다. 곡선들로 이루어진 완벽한 화환이다. 또 다른 글씨 쓰는 사람도 앉아 있지만 이번에는 정면으로 잡혀 있고, 그의 사지의 위치는 훨씬 더 복잡하다. 글씨를 쓰는 두 사람 사이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그는 책을 펴서 허벅지에 대고는 거기 있는 한 구절을 보여주려고 하는 듯하다. 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느라 골치를 앓을 필요는 없다. 이 인물은 정신적인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모티프로 인해 살아 있다. 높이 올려놓은 발, 몸을 가로지른 팔 상체의 뒤틀림, 그럼으로써 대조를 이루게 된 머리의 위치 등이 이 인물에게 중요한 조형적인 내용을 부여한다. 북방의 관찰자가 이 풍부한 모티프를 보고 지나치게 기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속단을 조심하라고 경고해야겠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동작 능력이 우리보다 훨씬 커서 자연스러움의 경계가 우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라파엘로는 여기서 분명하게 미켈란젤로의 길을 밟고 있으며, 더욱 강한 의지력을 가졌던 미켈란젤로를 뒤따르다가 때로는 정말로 자신의 자연스러운 감각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개별 인물들만 관찰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라파엘로가 이곳저곳 동작의 모티프들로 이룩한 것은 인물들을 그룹으로 배치한 기술에 비하면 작은 업적에 해당한다. 이전의 미술은 이 작품에 나타난 다양한 체계들과 비교할 만한 어떤 요소도 없다. 기하학 그룹은 극소수의 사람들밖에 몰랐던 문제를 해결하였다. 다섯 사람이 한 점을 향하고 있다. 이 얼마나 극히 선명하고 발전된 모습이며, 선은 아주 '순수' 한데 몸을 뒤튼 동작들은 또 얼마나 풍부한가! 맞은편에 있는 더 크게 구성된 그룹도 마찬가지다. 다채로운 동작들이 상호 보충하는 방식, 많은 인물들이 꼭 필요한 맥락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 그래서 모두 독자적인 것처럼 나타나면서도 수많은 목소리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방식 등은 최상의 것이다. 구조 전체를 바라보면 피타고라스 그룹 뒤쪽에 서 있는 청년이 이 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를 보고 영주의 초상화일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야 어찌 되었든 이 인물이 가진 형식상의 기능은 온통 곡선으로 뭉쳐진 이 그룹에 수직선을 제공하는 것이다.
<성체 논쟁>에서처럼 여기서도 풍요로움은 전면으로 밀려 있다.
뒤쪽 높은 곳에서는 수직선들이 숲을 이룬다. 앞쪽으로 나와 있는 인물들은 크고, 곡선과 복잡한 연결을 보인다. 중심인물을 둘러싸고 모든 것이 좌우대칭이다. 그러다가 속박은 느슨해지고 한쪽 옆에서 비대칭적으로 위쪽의 그룹이 계단을 통해 아래쪽으로 흐른다. 이런 균형의 방해는 앞면에 있는 비대칭적인 그룹을 통해 더욱 커진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뒤쪽으로 물러서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심 인물로 작용하는 것은 대단히 특이한 일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계산법에 따라 뒤쪽으로 갈수록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크기의 비례까지 고려해보면 두 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계단 위에 누운 디오게네스는 앞쪽에 바로 이웃한 인물들과 갑자기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인다. 이런 기적은 건축물을 이용한 방식으로 설명이 된다. 논쟁하는 철학자들은 마지막 아치의 빛을 받으며 서 있다. 앞쪽에 있는 아치의 집중된 선에서 다시 강렬하게 반복되고 있는 이런 신성함의 표지가 없다면 이 사람들은 중심 역할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에서도 비슷한 모티프가 사용되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 건축적 요소를 떼어버리면 전체 구성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공간과 인물들의 관계는 여기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들의 머리 위 높은 곳에 막강한 아치들이 뻗어 있고, 이 홀의 고요하고 깊은 호흡은 관객에게도 전달된다. 브라만테가 설계한 새로운 성 베드로 성당은 이런 정신에서 고안된 것이다. 그리고 바사리의 주장에 따르면 브라만테가 바로 이 벽화에 등장하는 건축물을 고안한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듯
하다.
<성체 논쟁>과 <아테네 학당>은 주로 판화로 통해서 도이칠란트에 널리 알려졌다. 대단히 표피적인 동판화일지라도 이 벽화의 강력한 공간 인상을 그 어떤 사진보다도 더 잘 전달해준다. 18세기에 볼파토(Volpato)는 일곱 장의 연작으로 라파엘로 프레스코들의 판화를 만들었다. 이들은 여러 세대를 걸쳐서 로마를 여행한 사람들이 집으로 가져온 기념품이었다.
그래서 이 동판화들은 오늘날에도 그냥 무시해버릴 수만은 없다. 켈러(Keller)와 야코비(Jacoby)는 전혀 다른 눈과 다른 수단으로 그것을 공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1841~1856년에 나온 켈러의 <논쟁>은 판의 크기 면에서 이전의 것들을 압도한다.
볼파토가 전체적인 구성만 원작대로 제시하고 회화적인 현상은 멋대로 강화시켰던 데 반해서 도이치 사람인 켈러는 원작에 충실하려고 했고 라파엘로 특성의 모든 깊이를 자신의 양식으로 다 표현하고자 했다. 명료하면서 확고하고 강한 명암을 가지고 있지만, 회화적인 감각 없이 자신의 인물들을 평면에 묘사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형식적으로 선명하기를 원하면서, 색채의 조화와 특히 프레스코의 명암 톤을 유지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야코비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였다. 그의 <아테네 학당>은 10년 간 작업한 결과이다(1872~1882). 이 분야의 문외한은 원작의 색채 가치에 어울리는 톤을 동판에 표현하고, 회화의 부드러움을 재현하며, 밝은 프레스고 색채를 공간적으로 명료하게 남겨두려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지 전혀 짐작도 못한다. 이 동판화는 유례없는 업적으로 여겨졌다. 어쩌면 이것의 의도는 그래픽 미술에 주어지는 한계를 완전히 넘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축소를 중요하게 여겨서 비교적 단순한 선을 이용한 볼파토의 축소판을 더욱 사랑하는 애호가들도 언제나 존재한다. 인상의 기념비적인 특성의 어떤 점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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