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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성체에 대한 논쟁

love으뜸 2022. 6. 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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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聖體) 현시대가 있는 제단 주위로 네 사람의 교부(敎父)들이 앉아 있다. 교리의 기초를 세운 위인들이다. 히에로니무스, 그레고리우스,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이들을 신자들이 둘러싸고 있다.
눈에 띄게 기품 있는 신학자들, 경건함과 숭배로 몰려드는 불 같은 젊은이들,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저쪽을 가리켜 보인다. 이 사람들의 집단속에는 이름 없는 사람들과 유명한 인물들이 나란히 있다. 당시 교황의 아저씨가 되는 교황 식스투스 4세를 위한 명예로운 자리도 여기 마련되어 있다.
그것은 현세의 장면이다. 저 위쪽에는 삼위일체의 인물들이 옥좌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성인들이 반원형으로 둘러앉아 구성을 이룬다. 맨 위에는 날고 있는 천사들, 앉아서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가 전체 장면을 주도한다.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그를 동반하고 있다.
그 위에는 축복하는 하느님 아버지가 그의 아래쪽에는 비둘기가 있다.
비둘기의 머리는 정확하게 그림의 세로축 중심에 있다.
바사리는 이 그림을 성체에 대한 논쟁이라고 이름 붙였고, 오늘날까지 이 제목대로 불린다. 그러나 그것은 맞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는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말도 거의 없다. 가장 분명한 것은 이미 여기 묘사되어 있다. 교회의 최고 비밀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다는 것은 천상의 존재들이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통해서 확인된다.
우리는 그 이전 유파들이 제시한 과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가를 알아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수많은 제단화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경건한 남자들 다수가 고요히 함께 있는 것, 그리고 저 위 천상의 존재들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은 달이 숲 위를 비추듯이 고요하다. 라파엘로는 처음부터 단순히 서거나 앉는 모티프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고요하다는 공통성이 움직임과 생동하는 활동을 지닌 전체 구성으로 대체되어야 했다.
그는 우선 주요 그룹의 네 인물(교부들)을 책 읽기, 명상, 환영 보기, 구술 등의 계기로 구분하였다. 그러면서 몰려드는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그룹을 만들고, 그들은 서 있는 신학자들의 조용한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제단 앞쪽에 숭고한 뒷모습을 보이는 인물에서 감정은 한 번 더 억제된다. 이 인물에 대한 대립으로 다른 쪽에는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조용하고 확고하게 고개를 높이 쳐들고 위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의 뒤에는 아주 세속적인 모티프가 나타난다. 흉벽에 몸을 기댄 젊은이와 그에게 교황을 가리켜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림의 맞은편 다른 쪽 구석에는 반대로 한 젊은이가 한 노인에게 그림의 중앙부를 가리켜 보인다. 노인은 난간에 기댄 책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책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노인이 설명 중인 듯한데, 젊은이가 모두 몰려가고 있는 한가운데의 제단으로 가자고 그에게 제안한다. 라파엘로가 여기서 독자적인 의견, 곧 종파를 그리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특정한 인물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이 모티프는 라파엘로가 미리 써둔 계획에는 없었다. 그는 신학자들과 교황 식스투스 4세, 그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한두 명의 인물을 덧붙일 셈이었다. 그밖에는 자신의 완벽한 자유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이름 없는 인물들에게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티프들을 전개하였다. 그로써 우리는 사태의 중심에 들어온 것이다. 그림의 의미는 개별적 인물들이 아니라 전체의 구조에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개별적 요소가 전체의 효과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전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가를 깨달아야만 비로소 라파엘로를 올바로 보게 된다.
여기서 심리적인 것이 가장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실망해서는 안 된다. 기를란다요라면 사람들의 머리를 좀 더 설득력 있게 만들었을 것이고, 보티첼리라면 좀 더 깊이 있는 종교적 감정 표현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피렌체 오니 산티(Ognissanti)에 있는 보티첼리의 <아우구스티누스>와 견줄 만한 인물은 없다. 라파엘로의 업적은 다른 쪽에 있다. 이런 차원들을 가진 그림, 즉 움직임이 그렇듯 풍부하고 많은 깊이를 가진 그림을 이토록 명료하게 전개하고 리듬 있게 분할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구성에 대한 최초의 질문은 교부들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주인공 그룹이며 따라서 주인공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들의 크기가 커지려면 무대 위에서 그렇게 멀리 밀려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림은 단순한 선으로 분할되고 말 것이다. 그림에 깊이를 부여하기 위해 라파엘로는 처음에 약간 흔들림을 겪고 나서 교부들을 멀리 물러나게 만들고 그들에게 계단을 받쳐주었다. 그로 인해 구성 문제는 다행스럽게 해결되었다.
계단 모티프는 극히 성공적이어서 모든 인물들은 어느 정도 손을 내밀고 중심부를 향하게 된다. 나머지는 제단 저쪽 너머에서 생생한 몸짓을 하는 남자들을 덧붙임으로써 완성되었다. 그들은 뒤편에 앉은 히에로니무스와 암브로시우스에게 눈길을 주목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야 나타난 생각이다.
구성의 제일 큰 흐름은 그림 왼편에서 가운데로 향한다. 손을 들어서 가리켜 보이는 젊은이, 기도하는 사람들, 격정적인 자세로 뒷모습을 드러낸 인물 등은 눈길이 쾌적하게 좇아가는 동일한 울림의 동작들을 보여준다. 라파엘로는 뒷날에도 언제나 이런 눈길의 흐름을 염두에 두었다. 중심인물들 중 마지막 인물인 구술하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몸을 옆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제는 이런 몸짓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림 오른편과의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오른편에서는 움직임이 점차 정지되고 있다. 이런 형식적인 고려는 15세기와 비교하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라파엘로는 교부들을 극히 단순한 시점으로 재현하였다. 왼편의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옆모습과 고개를 쳐든 옆모습을 보이고, 세 번째 사람은 약간 옆으로 틀었다. 그들의 앉은 모습도 가능한 한 단순하다. 이것이 그림의 경제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경우에 그들에게 다른 어떤 잔손질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필리피노 리피의 <토마의 승리> 같은 15세기의 그림은 바로 이런 점이 부족하였다. 관객 쪽으로 다가올수록 동작은 풍부해진다. 양쪽 구석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고개를 숙인 인물들이 가장 풍부한 동작을 보인다. 이 그룹들은 서로 대칭으로 맞추어져 있으며, 같은 방식으로 - 가리켜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 안쪽의 인물들과 결합된다.
대칭이 그림 전체를 지배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일탈이 나타난다.
"가장 큰 일탈은 중앙부에 있다. 여기서도 대단히 강력한 것은 아니다. 라파엘로는 아직도 끈질기게 결합시키고 진정시키고 한다. 그는 뒤집어엎거나 갈라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경건하다고 부를 정도의 섬세함으로 선들이 취급되고 있어서 어떤 선도 다른 선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며, 선들이 아주 많은데도 고요함의 인상이 압도적이다. 둘로 나뉜 집단 또한 같은 의미에서 각기 (풍경화의 배경 선을 통해 하나로 합쳐지고 위쪽에서 인물들이 모여 이룬 화환으로 전체적인 화합 이룩된다.
이렇게 고요하게 선들이 결합되어 있는데도 그보다 더 높은 관점이 있으니, 그것은 라파엘로가 모든 인물에게 부여하고 있는 명료함이다. 이전의 화가들이 한데 뭉쳐버린 것, 머리 앞에 머리가 겹치도록 만들던 것을 페루 지니의 단순성을 배운 이 대가는 모든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볼 수 있도록 형태들을 분리해놓았다. 이 점에서도 시각을 위한 새로운 배려가 척도를 이룬다. 보티첼리나 필리피노 리피가 그린 사람들의 집단을 보면, 군중 속에서 개인을 알아보기 위해 가까운 곳에서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눈길을 전체로 끌어들이는 16세기 미술은 원칙적으로 단순화를 요구하였다.
'그림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이런 종류의 질이지 개별적인 스케치가 아니다. 이 그림이 본질적으로 새로운 운동의 상당한 총합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도 많은 것이 아직 서툴고 불안하다. 식스투스 4세는 불확실한 모습이다. 그가 걷고 있는지 멈추어 섰는지 확실하지 않고, 그가 무릎으로 책을 받치고 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맞은편에 제단을 가리키는 청년은 이른바 베아트리체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의 모티프(스케치로 남아 있다)에 근거한 인물인데 매우 실패한 착상이다. 머리들은 초상화 표현이 아닐 경우 거의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공허하다.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인물들로 신자들의 공동체를 묘사했다면 어떻게 보였을까
이미 말한 것처럼 라파엘로의 <성체 논쟁>의 위대한 특성과 그 효과의 원래 조건은 보편성이다. 전체적인 벽면의 분할, 아래쪽 인물들의 위치,성자들로 이루어진 위쪽 곡선의 부풀어 오름, 움직임과 당당한 옥좌 사이의 대립, 풍부함과 고요함의 결합 등이 한데 어울려 자주 종교적 기념비 양식의 완벽한 예라고 찬양받은 이 그림을 만들어냈다. 특별히 그에게 나타나는 특성은 청춘의 섬세한 감각성과 싹트는 힘 사이에서 극히 매혹적인 균형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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