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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그리스 미술

love으뜸 2022. 5. 1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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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Aegean) 미술 흔히 고대 유럽 문명의 발상지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꼽고 있으나, 에게해(海)의 연안 여러 섬의 유적 발굴에서 이 지역이 그리스 문화의 발상지로 소개되기에는 19세기 후반에 와서였다. 에게해(海)는 발칸 반도, 소아시아, 크레타섬에 둘러 싸이고 잘 발달된 해안, 작은 섬이 많아 다도해(多島海)로도 불린다. 온화한 기후의 혜택과 바다로 둘러 싸인 관계로 타민족의 침해를 받을 우려도 비교적 적은 지리적·풍토적 조건하에서 개방적이고 세속적인 미술 문화가 일찍이 형성되었다. 에게 문명은 그 성립 과정에서 크게 셋의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우선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한 섬 주변의 남방계 민족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B.C. 3000년경 이미 훌륭한 청동 문화를 갖고 있었다. 또 그리스 본토에 이주해 온 북방 민족과 한편 트로이 지방에 정주한 인종들은 B.C. 2000년경부터 그 지방의 주도권을 잡고, 성격 이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하였다. 말하자면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하는 미노스(Minos) 문화,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Mycenae) 문화, 소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트로이(Troy)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중 가장 먼저 개화된 문화가 미노스 문화였으며, 에게 문명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미노스 미술은 1908년 에반스(A. Evans)의 크레타의 크놋 소스 발굴 이래 점차 알려졌다. 미노스 미술(B.C. 3000~1400년경)이 크게 발달한 시기는 B.C. 2000~1400년이었으며, 그들은 해양 민족으로서 분묘나 신전 건축과는 관계없이 궁전 건축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크놋소스 궁전에 장식된 벽화 등은 자연 그대로의 인상을 묘 사하였
고, 자유 분방한 밝은 표현은 그들의 쾌활하고 향락적인 개방 문화를 연상하게 한다. 한편 그리스 본토에 정주한 북방 이주민은 B.C. 2000년 경부 터그들 나름대로 독자적인 문화를 갖었는데, 미노스 문화와 달리 호전적이고 전투적 기질의 미술 문화가 B.C. 1400~1200년에 가장 융성하였다. 특히 미케네를 중심으로 한 왕궁의 유적들은 다분히 미노스 문화를 답습하면서도 개방성을 상실한 엄격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트로이 문화는 타 지역에 비해 섬세함이나 세련면에서 크게 모자랐으며, 다만 북방계의 지배층 문화와 소아시아의 토착 문화가 혼합되어 그리스 본토로 이어지는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리스 미술의 여명기 이러한 에게 문화는 마침내 그리스 본토에서 그리이스 문화의 전신이 되었다. 그리스 본토에는 B.C.15세기경부터 북방의 도리아(Dorian) 민족이 침입하기 시작하여, B.C13 세기경에 정주하면서 B.C. 9세기경부터는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침입후 크레타, 미케네의 궁전을 파괴하는 등 B.C. 11~9세기까지 그리스 미술의 암흑시대를 초래하게 하였다. 그로 인하여 고도로 세련된 미노스 예술은 소멸되고 이 시대의 찬란하였던 유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으로 되었다. 그러 나이 시기가 그리스 미술을 형성하게 하는 다른 측면의 의의는 자못 크다. 호메로스의 서사시(Iliad)에 따르면 이 시대는 영웅시대였으며, 침입자와 선주민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었으며, 이들의 일부는 바다를 건너 소아시아 연안과 이탈리아 남부로 이민하였고, 그리스는 새로운 정치 형태인 도시 국가가 각지에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로 인한 그리스 예술의 성립을 살필 때 다음의 세 가지가 큰 요소를 이룬다. 첫째 크레타, 미케네 문명의 유산, 둘째는 도리아인의 진취적인 기질, 셋째 앗시리아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말하자면 미노스 문명과 도리아 문명의 차이는 청동기 문명과 철기 문명이었으며, 이 시대에 최초로 새로운 그리스 예술을 형성한 것은 공예였는데, ‘디필론(Dipylon) 양식의 도기'에서 살펴지는 기하학적 형태의 엄격한 추상적 표현은 유연성과 사실성이 강한 미노스 예술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러나 이 시대의 조각은 크레타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크레타와 미케네의 선주민은 바다를 건너 소아시아에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그들의 미노스 예술의 특성은 앗시리아, 이집트의 영향과 더불어, 그리스 본토에 영향을 주어 왔다.그리이스 미술의 전성기 그리스 문화의 전성기는 B.C. 5~4세기로서 여기에서 성숙하고, 여기에서 완성된 문화가 여러 의미에 있어 그 후 유럽 문화의 모체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 추정하면, 이미 B. C. 9세기경에 그리스 독자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집트 혹은 에게해(海)의 여러 섬에서 발전된 선주민의 문화(미술)가 그리스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것은 그리이스 민족 고유의 예술적 재능에 의해서 소화되었고, 더우기 이를 바탕으로 빛나는 전개를 하였던 것이다. 이 문화가 그리이스 본토에 정착, 형성되면서 그 성장 과정을 살필 때, 대개 다음 3기로 나누어 보는 것이 보통이다. 첫째 과도기(Archaic 기:B.C. 800~450년), 둘째 전성기(Classic기: 전기 B.C. 450~400년, 후기 B.C. 400~330년), 셋째 전파기 ellenistic 기: B.C. 330~30년)로 구분된다.그리고 그리스 미술의 특색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먼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 완성의 이상이 그들의 문화, 특히 미술의 특색으로 되어 있음을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종교관이 다른 고대 민족과는 달랐으며, 현실적이고 인간 중심이라는 것, 그리고 생명이 있는 인간 완성을 이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 이상적인 인간상 형성을 위해서, 도처에 신전을 건축하였고 체육을 장려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그리이스인 특유 의미 술을 만들어 내는 데 기초를 이루었으며, 더욱이 그들의 인간 완성의 이념을 조화와 균형의 세계에 두었던 것이다.이상과 같은 기반 위에서 점차로 발전한 그리스 미술은 성숙기에 접어든 B.C. 6세기에 비로소 명확한 성격을 발휘하였다. 특히 그리스적인 성격을 조각에서 찾을 수 있는데, 가령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서 발굴된 많은「소녀상」또는「아폴론(Apol-lon)」의 이름으로 불리는 남자 나상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얼마나 조화와 균형을 이상미로 하였는지 말하여 주고 있다. 또한 이 아르 카이크(Archaic: 고졸) 말기의 작품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공예품의 하나인 항아리 (壺)의 제작이다. 그러면 이 시기의 미술을 건축, 조각, 공예 등 항목별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건축에 있어서 아르카이 크기의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이집트 건축에서 영향을 받아 출발하였고, 아르카이 크기 말기가 되면서 그리스적인 독특한 것이 만들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 미술의 전성기는 B.C. 6세기의 후반에서 5세기 초엽에 일어난, 수차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은 후 아테네시를 중심으로 하여 비약적으로 착실하게 발전하였다. 그것은 민족 전체의 성숙과 민족 생활의 충실성이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이러한 민족에 의해서 이루어진 미술은 모든 의미에서, 사실상 기념비적인 것이 많다. 말하자면 신들을 모시는 신전, 그 신전을 장식하는 신상, 전승 기념의 기념상, 아울러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경기의 우승자들에서 찾았던 것
이다. 이와 더불어 어느 예술보다 그리스 정신이 가장 솔직하게 나타난 것은 신전 건축이며, 평면과 입체의 명확한 대조와 아름다운 비례는 이 신의 거처의 결정적인 모습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전들 은석 조 미식(石造式)의 구조에다 원주(圓柱)로 둘레를 에워싸고 조각으로 꾸며진 세모난 팀파눔을 앞뒤로 지닌 구조로 되어 있다. 원주의 기원은 이집트에서 찾을 수 있으나 초기에는 목재를 썼으며,그 후 엔타시스(Entasis : 주신이 불룩한 양식)와 플루우팅(Fluting:주신에 홈을 새김)을 가미하여 한층 아름답게 꾸몄다. 초기의 도리아 양식 (Doric order)에서 이오니아 양식 (lonic order)을 거쳐 코린트 양식(Corinthian order)으로 옮아 가는 과정에서 약간의 구조의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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