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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원으로 된 이 거대한 벽화는 반원의 아래 폭이 7m 70cm 나 되는 것이다. 이 그림의 오른쪽에 「정체 논의가 있는 것으로, 진실의 이성 탐구가 그림으로 박진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라파엘로의 선배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에서 모방한 듯한 고대로 마식의 대전당 가운데에, 고대의 철학자와 현인들이 사색하고 논의하는 모습이 커다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화면의 중앙에 있는 두 인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이두 사람의 철학의 거두가 논의하고 있는 것이 중심적 주제이다. 그 가까이에는 소크라테스가 그의 벗들과 같이 그들 특유의 문답으로 토론을 하고 있는데, 몇 개의 전제를 손가락으로 세고 있다. 무욕(無慾)의 옷을 입고 있는 디오게네스가 계단 위에 기대앉아 있고, 그 앞에 조화적 음계라는 표시가 된 석판이 보인다.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 노인은 피타고라스 인지도 모른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소로 아스타, 기하학자 유클리드 등 그리스 시대의 모든 역사적 인물이 등장한다. 모든 부분이 중심 부분을 향하고 있는 「성체 논의와는 반대로, 여러 개의 무리로 또는 인물 하나하나로 해체되어 있다. 이것은 다방면의 학문적 연구라는 주제의 의미를 살리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형이 하학적 학문은 계단 밑에 놓고, 상단에는 사변적 철인을 배열하고 있다. 이러한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주제는 성체 논의에서보다 다양한 구도를 이루고 있다. 플라톤의 얼굴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많이 닮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그를 존경하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유클리드의 모습은 브라만테를 닮았다. 글씨를 쓰고 있는 이의 옆얼굴은 피타고라스, 두 번째 글씨를 쓰고 있는 것은 헤라클레이토스로서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닮았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인물은 몇 명이 한 무리를 이루고, 그 무리는 또한 전체 중의 한 무리로서 필연적 관련을 지니고 있다. 맨 뒤에는 라파엘로 자신이 젊고 아름답게 그려져 마치 왕자처럼 초연하게 서 있다. 중앙의 두 인물로 시작되는 이 구도도 좌우 상칭(相稱)의 완벽한 배치로 시작되었으나, 아래로 내려오면 그러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무리를 이루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그 전체의 인물들을 앞의 큰 아아치가, 그리고 멀리 여러 개의 아아치를 갖는 건물이 빈틈없는 짜임새를 만들고 있다. 건물과 인물이 원근법에 의하여 교묘히 결합되어, 커다란 이야기를 조형성과 더불어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지오르지오네는 교회의 주문을 얻을 수가 없어서, 세속적인 새로운 주제를 선택하지 안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오히려 그의 문학적 소질을 키울 수가 있었다. 회화사에서는 15 세기를 넘어서서 성기(盛期) 문예 부흥기의 창립자가 되어, 티지아노(Tiziano)의 선구자가 되었다. 15 세기 인물의 윤곽이 예민하고 경직된 상태를 부드럽고 둥근 맛이 나는 부드러운 광선으로 변화시키고, 따뜻한 색채가 교류되어 생기에 넘치는 그림의 세계를 이루었다.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된 이 명화는 시정이 넘치는 것으로, 따뜻한 색과 풍부한 광선이 사람과 자연을 정이 넘치게 결합하고 있다. 풍만한 인체의 아름다움과 황금색의 빛으로 가득 찬 숲과 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정담, 이러한 화풍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경지이다. 그는 이탈리아에서는 처음으로 예술품으로서 감상할 수 있는 회화의 한 면을 개척한 사람으로,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환대받았고, 티지아노 등 후배들에게 새로운 유화의 길을 열어 주었다. 아쉽게도 그는 33세로 베네치아에 번진 흑사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불과 22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이것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원숙한 시기의 작품으로, 내용이나 표현이 풍부하고 복잡한 것이 놀랍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암법을 도입하여, 지금까지의 베네치아파의 색채와 조화시켜, 깊은 분위기를 만들어 시정에 넘치는 화면을 만들었다. 지오르지오네의 진필임이 확인된 작품이다. 이런 종류의 그림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극히 드문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알맞은 그림이다. 1530년에 미키에 르란 이탈리아 사람이 이 그림을 베네치아의 가브리엘 벤 도라민가(家)에서 보고, '놀과 집시 여인과 병사가 있는 풍경, 이는 지오르지오네에 의해 그려졌다'라고 기록하였다. 그 후 이 그림은 [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 주제에 관하여는 여러 의견이 있다. 어떤 사람은 성서에서, 고대 신화에서, 또는 같은 때의 문학 작품에서 설화적인 주제를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설화적인 주제를 부정하고, 근대 회화에 공통된 표현 즉 풍경화로서 이 그림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그림이 갖는 매력은 그 그림의 순수성과 더불어 어느 이야기의 설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시적 상징성이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그 시대의 문학 작품 중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인간과 자연이 혼연 일체가 되는 이상향인 ‘아르카디아'에 대한 동경이 이 그림의 중요한 주제임이 틀림없다. 본래는 런던의 알란다 레 자작의 수집품이었기 때문에, 이 그림을 ‘아렌다레의 탄생도'라고도 불렀다. 마구간 대신 그려진 동굴 앞에서 양치기들이 예배하는 장면이 표현되어있고, 왼쪽에 풍경이 작은 인물과 더불어 전개되는데 길과 숲, 나무들이 재미있게 먼 산에 이르고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화면에 거의 풍경이 배치되었고, 주제와 관계가 있는 인물은 겨우 그 정도로 축소되어 있다. 이 그림이 지오르지오네의 작품이라는 증거는 없으나, 그 그림의 양식이나 질로 보아 많은 학자들이 그의 작품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작품과 거의 비슷한 작품이 비인의 미술사 박물관에도 있는데, 이것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워싱턴에 또 있는 작품을 작자 자신이 되풀이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자연 묘사의 정밀성은 15세기의 화가 나 북 유럽파의 화가가 그린 것처럼 섬세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은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빛과 색이며 부드러운 형태의 감각이다. 장수한 지오바니의 말년의 작품인 이 그림은, 베네치아 화파에 신들의 축제라는 새로운고 즐거운 인간적인 야외에서의 주연을 주제로 하여, 티지아노에게 새로운 길을 터 준걸작이다. 당시 '미술가 전기의 저자 바사리는 “그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나, 그가 너무 늙었기 때문에 완성하지 못하고 티지아노가 완성하였다. 고 기록하였다. 극적인 풍경은 역시 티지아노의 손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감정하고 있다. 역시 티지아노의 청년기 작품이지만,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대표작으로 꼽히는 걸작이며 가장 고전적인 작품으로 알려졌다. 여인들이 기대앉은 대리석으로 된 샘의 주위에 부조가 보이는데, 이는 베네치아의 대법관 니콜로 아우레리오의 집안 표지로 보아 그의 주문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의 주제는 ‘사랑과 정결’ ‘우화와 진실’ ‘자연과 문명’ ‘충만한 사랑과 미치지 못한 사랑’ ‘덕과 쾌락’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으나, 1792년 이후 제목과 같이 불리게 되었다. 이 그림의 주제는 문학적인 내용으로 해석하려고도 많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티지아노가 옷을 입은 여성과 나체의 여성이라고 하는 두 가지 모티프를 대조시킴으로써, 여성 의미의 진실과 여성으로 상징되는 사랑의 참모습을 그리려는 것이 그의 의도임은 틀림없다. 지오르지오 네로부터 계승한 풍경과 나체의 미를, 최대한의 진폭을 가진 색조로, 보다 현실적인 시각(視覺)과 골격에 의해서 전개하고 구체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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