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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도 프리마베라처럼 그림의 주제에 관하여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호머)의 시 중에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비너스에게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겉옷을 바치고 있는 장면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나체의 여신은 녹색의 바다 위에 조개껍데기를 타고 있는데, 바람의 신 제피로스와 바다의 요정 크리로스가 입으로 부는 부드러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이제 막 육지에 오르려는 순간이다. 또한 비너스는 하늘과 땅에 의해서 출생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특히 나체에 가까운 남녀(신과 요정)가 서로 끌어안고 사랑의 미풍을 불러 일으키기
는 장면과, 그 바람이 빨간 장미 꽃잎을 사방에 뿌리고 있는 것은 비너스가 사랑의 신임을 상징하고 있는데, 사랑의 신인 비너스는 그리스의 신화에서 보는 천진난만한 신이 아니라, 크리스트교의 금욕주의에서 벗어나 관능적인 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반면봇티첼리의 마음속에 흐르는 정신은 그리스도교도로서, 그의 종교 세계와 관능과의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와 같이 약간의 수치를 느끼는 비너스, 즉 낙원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 같은 모습의 비너스가 탄생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에타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난 다음, 그의 제자와 성모 마리아 등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무덤에 장사지내기 직전의 애도하는 장면을 뜻하는 것으로, 이 장
면은 그림의 주제로 많이 취급되었다.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수난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잘 나타내며, 그러한 어리석음과 독선적인 판단과 행동이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주는 주제이다. 죽은 자식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성모의 고통은, 그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받는 모든 어머니의 대표적 상징이며, 더구나 죄 없이 죽은 자식을 안고 인간으로서 겪는 고통은 모든 여성의 귀감이다.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삼각형 구도로 배치되어 있으며, 삼각형의 정점은 가시관과 십자가의 못을 든 성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 앞에 기절한 듯한 성모 마리아에게 옷을 덮어주며 같이 슬퍼하는 것은 성 요한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져 극히 편안한 자세인 예수는 화면의 중심인물이며, 그 발밑에 엎드린 막달라 마리아는 넋을 잃고 있다. 딱 달라 마리아로부터 시작된 화면의 운동감은 예수의 몸을 거쳐 성모 마리아, 그리고 젊은 성 요한의 머리에서 다시 팔로 내려와 성모의 팔로 연결되어 밑으로 빠지고, 성 요한 옆에서 울고 있는 부인의 모습과 손, 정상의 성인이 화면의 남은 공간을 메우고 한층 더하면 빈틈없게 구성하고 있다. 도나텔로로부터 형체의 조소적(彫塑的) 파악에 대하여 감명받아, 조형성이 강한 조각적 성격의 작품을 그렸다. 그 후 그와 남매간이던 지오반니와 작품 세계의 교류가 이루어져 베네치아파의 색채가 도입되었다. 그로 인해서 만테냐의 그림은 강한 조형이 부드럽게 변모하고, 북쪽의 화가로서 엄격한 사실적 묘사를 지닌 북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을 확립한다. 그는 거의 평생 파도바에서 지냈으며 궁중 화가로서 많은 제단화와 벽화를 그렸고, 특히 그의 독특한 양식의 피에타는 숨을 거둔 예수가 누워 있는 것을 발에서부터 머리로 단축된 모습을 원근법적으로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은 20여 세 때의 작품으로, 그가 비범한 기량과 독자적 양식을 발휘하여 파도바의 제 일인자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였을 때의 그림일 것이다. 예수의 모습이 나 천사들의 표정, 마리아의 의복, 그리고 전체의 색채 등이 만테냐의 전형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중세의 도식적 표현의 양식이 남아 있어, 만테냐의 고전에 관한 공부가 어떠하였던가를 보여 준다. 나무판에 그린 이 그림은, 많은 화가가 주제로 삼은 예수의 인간으로서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나타낸 작품이다. 그의 장대(壯大)한 착상과 조형성이 강한 조각적 효과, 그리고 단축법(短縮法)이나 복잡한 곡선적 원근법(曲線的遠近法)에 의해서 독자적 경지를 개척한 그는, 15세기 파도바의 화가로서 대표적 인물이었으며, 피렌체파와 베네치아파가 만나는 정점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는 후세에 끼친 영향이 컸으며, 전기의 엄격한 조형성에서 베네치아파의 영향으로, 후기의 작품을 부드러운 경향으로 변모시켰다.
이 그림은 그가 만토바 공(公)의 궁중 화가로 발탁된 후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제자들을 산밑에 남겨 놓고 혼자 산 위에서 기도하는 고독한 예수의 심정이, 그의 특유한 원근법에 의하여 풍경과 결합하여 커다란 극적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오른쪽의 죽은 나무에 앉아 있는 새도 이 괴롭고 고독한 정경에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바위 밑의 밝은 색채는 예수를 보다 강하게 돋보이게 하고 있다. 여기 보는 크리스트의 세례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유화로서 나무판에 그려진 것이다. 마태복음서의 3장 13절부터 17절까지의 내용으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예수의 모습이다. 옆에 앉아 있는 천사 중 하나는 등을 보이고 있으나, 그 머리를 옆으로 돌려 옆얼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레오나르도의 독자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초기에 그려진 이 작품에 벌써 그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천사는 예수의 옷을 들고 있으며 이것은 천사와 예수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수의 바로 옆에 있는 천사는 몸을 움직여 다른 천사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의 예수를 보다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잘 배려한 것이다. 멀리 뒤로 뻗어 있는 요단강은 물로써 세례를 받아 깨끗해지는 것을 상징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얀 비둘기가 하늘에서 성신으로 강림하고 있다. 그의 스승인 베록 키오가 이 비둘기의 뛰어난 묘사에 놀라, 비둘기 그리기를 꺼렸다는 기록도 있으나, 그것이 일화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그의 뛰어난 재주를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봇티첼리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에게 영향도 주었다. 이 장면은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에 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주께서 당신과 같이 계시니 그대가 한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하고 고하는 장면이다. 이 주제는 많은 화가가 취급한 것으로서 많은 작품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책을 읽던 마리아는 놀라서 왼손을 들고, 천사는 순결의 표시로 백합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성신을 뜻하는 비둘기는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의 구도는 최초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구상한 것이 아니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것은 멀리 규칙적으로 네 개의 전나무가 배열되어 있는데, 가장 오른쪽의 나무는 건물의 끝과 겹쳐 있고, 화면은 천사가 있는 부분과 성모가 있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성모나 천사의 얼굴은 기를란다요(Ghirlandaio)식으로 되어 있으나, 얼굴의 세부는 레오나르도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공기가 맑은 저녁때의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고, 꽃이 만발한 땅이 암굴의 성모」에서 보는 바와 같은 모습을 예견하는 듯하다. 주제와 같이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최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미완성의 그림인 세왕이 예수께 조배를 하는 장면인데,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인물의 구성과는 달리 많은 사람이 그려져 있어, 성 요셉이나 성 요한 는 어디 있는지, 주인공인 세 왕은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힘든다. 32명의 사람을 그린 이 그림은, 그중의 28명이 둘씩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그의 회화론에서 “화가들의 가장 큰 과오는 인물의 얼굴을 모두 닮은꼴로 그리고 있는 점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닮은꼴로 그려진 것은, 그의 특별한 의도였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이중 인물상은, 근본적으로는 그때의 철학자인 피치노가 플라톤의 향연을 번역하여 내놓은 데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본래 인간은 둘이 하나가 되어 발이 넷이었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신에게 반항하였기 때문에 제우스신이 노하여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 때문에 인간은 그의 짝인 반신(半身)을 찾으며 살게 되었다. 그 반신을 찾은 두 사람이 가장 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그리스 시대의 신화가 이 그림에 작용하는 것 같다. 배경은 폐허가 된 건물이며, 떠들며 말다툼을 하는 사람들과 전투를 하고 있는 기사, 말에서 땅에 떨어진 자, 짖고 있는 개 등 혼란하게 그려져 있으며, 올리브나무와 종려나무가 있는 축복받은 승리와 평화의 상징인성탄을 축하하고 조배 하는 세 왕의 무리들로 대조시켜 성탄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 단색의 소묘는 미완성이나, 레오나르도의 역량이나 사상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걸작으로,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옮겨 살기 위해 떠날 때 피렌체에 남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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