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르네상스 미술

마솔리노의 대표작

love으뜸 2022. 5. 13. 20:48
반응형

프랑스에서 시작된 고딕 건축과 더불어 고딕 미술은 유럽 각지로 전래해서 국제적 고딕 양식을 낳게 되었다. 마삿치오는 이러한 시대적인 유행을 벗어나 지옷토의 새로운 조형적 전통을 이어받고,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의 원근법적 기법과 도나텔로(Donatello)의 과학적이며 실증적인 사실주의 성과를 받아들여, 회화에 있어서의 참 문예 부흥기의 양식을 확립한 근대 회화의 시조이다. 피사의 카르미네 성당에 여러 장의 제단화를 그렸으나 그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적고, 28세의 젊은 나이로 로마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의 수는 많으며 문예 부흥기에 끼친 영향도 매우 크다. 이 성모상은 3장으로 그려진 그림 중, 가운데에 있는 보다 크게 그려진 부분이다. 나무판에 그려진 이 그림의 왼쪽에는 성 바르톨롬메오와 성피아지오, 오른쪽에는 성조베나레와 성안토니오 아바테가 그려져 있다. 이 제단화의 발견자인베르티는 지옷토, 브르넬레스키, 도나텔로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그 혁신적인 면을 말하고 있다. 성모가 안고 있는 성체(聖體)의 상징인 포도를 먹고 있는 예수는, 지금까지 그려졌던 예수와 달리 완전히 나체로 되어 있다. 베르티에 의하면 예수를 감고 있는 엷은 천은 나중에 그려 넣은 것이라 하며, 과학적인 원근법이 정확하게 화면에 적용되고 있다.

 피렌체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이 성당은, 그 당시의 호화스러운 다른 성당에 비하여 소박하면서도 단정하고 아름다운 성당이다. 그 성당의 왼편에서 세 번째 간의 창밑에 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1568년에 그 자리에 성모께 바치는 제단을 만들자 바사리가 그린 그림에 가려져 마삿치오의 삼위일체는 눈에 띄지 않다가, 1861년에 이 제단이 옮겨짐에 따라 다시 빛을 보게 되었는데, 이 그림은 캔버스(유화를 그리는 천)에 옮겨져서 정면에 놓였다가 1952년에 제자리로 다시 옮겨졌다.
이 그림의 십자가상의 예수는 건물 안에 안치된 것으로, 문예 부흥기의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려졌는데, 이는 골고다 위의 성당을 나타낸 것이며, 그 그림의 밑에 있는 제대 뒤에 그려진 유해는, 아담의 묘가 있는 성당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십자가 밑에 그려진 인물은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이며, 그 밑에는 그림의 기증자가 그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는 우리가 죽을 때 우리의 편이 되어 예수께 기도하는 중계자로서 그려진 것이며, 무릎을 꿇고 있는 두 기증자는 우리 인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연옥에서 영혼의 구원을 기도하는 죽은 사람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특이한 것으로 몇 개의 선례가 있으며, 15세기 초의 도미니쿠스 수도원의 사상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원근법의 표현을 위해서 실과 컴퍼스 등 많은 기구를 사용하였다. 주제는 야고포 다 보라지네의 황금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안티오키아의 총독 테

오필스왕은 성베드로를 투옥하였으나, 성바오로의 중재에 의하여 14년 전에 죽은 왕자를 소생시키는 조건으로 성베드로를 석방한다. 과연 기적이 일어나서 왕자가 소생하고 테 오필스 왕과 안티오키아의 전 주민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여 성당을 세우고 성 베드로를 성좌에 앉혀 숭배하였다는 전설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마삿치오가 반쯤 그렸을 때 로마로 떠났는데, 나중에 필립포 립피가 완성하였다는 설이 있다. 하여간 마삿치오에 의해 완전히 그려지지 않은 것은 분명하며, 그중의 일부는 립피의 가필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 장면의 인물들, 특히 성베드로와 놀라서 손을 들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은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있는 바르디가의 소성당과 메디치가의 지옷토의 벽화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말한 바와 같은 주제를 통하여 당시의 비스콘티가(家)의 독재 군주적 성격과, 그 비스콘티가를 보다 평화적인 정치 방향으로 이끌려는 교황 마르티누스 5세의 조정의 공을 나타내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따라서 테오필스왕에 비스콘티의 초상이 그려졌으며, 화면의 왼쪽에서 네 번째의 남자는 마르티누스 5 세의 외교상의 측근자인 카스틸리오네 추기경의 초상을 그려서, 당대의 중요 인물을 주제에 알맞게 그려 넣어 그 시대의 여러 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고 한다. 마솔리노의 40세 이전에 관한 일은 전혀 기록이 남은 것이 없어 아무것도 전해지는 것이 없으나, 지옷토파의 스승에게 사사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요한, 마리아의 모습이나 활발한 아기 예수는, 당시의 양식인 국제적 고딕 양식의 영향이 보인다. 마솔리노 말기의 작품은 고딕 미술의 성격이나 양식으로 돌아간 것을 알 수있고, 그때의 신예술인 마삿치오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인체에 관한 연구나 원근법(투시화법)의 연구도 많이 하였으나, 마솔리노의 작품의 근저를 이루는 것은 감미로운, 시적 인경 향이며, 경쾌한 밝은 색과 이 그림의 위쪽에서 보는 것 같은 파상적인 곡선을 사용하였다. 15 세기 문예 부흥기의 막을 연 마삿치오의 스승인 마솔리노는, 앞서 성모자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섬세하고 감미로우며,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는 율동감이 넘치는 시적인 그림을 그렸으나, 그 후대의 그림인 마삿치오의 작품에서와 같은 힘찬 사실성은 없다. 이 그림은 1426년에서 30년경에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졸레 성당을 위해서 그린 것으로, 세 폭으로 된 것 중 왼쪽의 일부이다. 그 가운데 부분은 나폴리에, 오른쪽 부분은 필라델피아에 있다. 지극히 부드러운 율동감을 가지고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리는 선들은, 마솔리노의 특징이며 아름다운 시정에 넘쳐 있다. 그러나 얼굴의 표정은 다른 작품에 비하여 매우 개성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마삿치오 등 후세들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밝은 색채와 이 서정적인 아름다움에서 새 시대의 바람을 서서히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마솔리노의 특징과 마삿치오의 영향을 받은 화풍임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신약성서 누가복음 제1장에 나오는 장면을 주제로 한 것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께 나타나 “당신이 한 아이를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십시오.” 하고 고하는 장면이다.이 그림은 고르도나의 성도미니코 성당의 제단화로서 그린 것이고, 이 밖에도 몇 점의 같은 주제로 그린 벽화가 있다. 그중 유명한 것은 피렌체의 성마르코 수도원의 벽화로서,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2층 입구에 그림이 잘 보존되어 있고, 수도자가 기도하는 각방마다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다.이 그림에서도 안젤리코의 특유한 빛이 나는 맑은 색으로 그려진 천사가 성모께 경건하게 예수를 잉태함을 고하고 있는데, 놀라움으로 당황하는 성모와 천사의 대면을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성신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하늘을 지배하는 천사의 우두머리 메 다이용과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까지 그려져 있어, 인류의 조상에서부터 인류의 구원, 즉 예수 탄생의 알림 까지를 한 그림에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표현은 중세 때부터 많이 사용된 방법이다. 또한 안젤리코는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를 문자로 그려 넣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