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우첼로는 기베르티의 제자이며 협력자이기도 하였다. 나중에 회화로 전향하여 문예 부홍기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화가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높은 예술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회화의 과제인 여러 문제에 대한 추구 때문이다. 원근법의 이론도 그 중의 하나로서 완전한 해결은 보지 못하였다. 그는 중세의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식물학적 정밀성으로 식물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정밀 묘사에서 그리는 즐거움에 넘쳐 있는 것을볼 수 있다. 우첼로 이름은 새의 묘사를 잘한 데서 연유된 것이라 한다. 이 그림은 왕녀 세르비오스가 기르고 있던 용이 뛰쳐나와, 왕녀가 위험에 직면했을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로마의 군인 조르지오(게오르기우스)가 그 용을 퇴치하고 왕녀를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주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이 그림은 풍부한 환상적 이야기로 넘쳐있다. 오른쪽 위의 반원은 만년의 우첼로의 상징으로 그려진 것으로 연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립피에게 사사한 봇티첼리는, 베록 키오와 폴 라이오로부터 사실주의를 배웠는데, 그가 남긴 여러 그림은 그의 자연 연구에 대한 소박한 정열을 보이고 있다. 미묘한 그의 그림의 흘러내리는 곡선은, 그의 독특한 감상적인 시정에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특유한 개성을 일찍부터 볼 수 있다. 그는 그때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를 동경하는 고전주의 문학가들의 분위기에 젖어, 이교적이며 시적 정신이 풍부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말년에 교황의 초대를 받아 바티칸내의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렸는데, 로마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사실주의는 줄어들고, 피렌체의 조형적 전통에서 멀어져, 상징적인 선과 장식적 효과가 강조되어 독자적 예술이 탄생한다.
최초의 스승인 리피 수법의 영향이 엿보이는 이 그림은, 감미로운 아름다움이 넘치는 성모가 자애로운 모습으로 아기 예수를 살며시 안고, 소년 요한은 예수를 예배하고 있다. 행복한 봄의 계절을 지배하였던 비너스는, 잠깐 동안에 사라져 가는 계절을 슬픈 듯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서 있고, 오른쪽의 꽃의 여신 플로라를 잡으려는 남자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로서 그를 잡아 결혼하고, 그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을 꽃으로 변모시켰다. 그 왼쪽의 꽃의 여신은 온몸이 꽃으로 둘러싸 있는데, 이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에 의해 변모된 플로라이며, 중앙에 비너스, 왼쪽에 세 미신(神)과 메르쿠리우스(머어 큐리)가 있어, '이 그림의 주제는 비너스의 왕국이다'라고 한 학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그리스의 시구(詩句)에서 나온 것으로, 크리스트 교적 주제만 취급하던 중세에 비하여 얼마나 이교적인가를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이 그림의 주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고대의 조각을 보는 듯한 아름답고 조화에 넘치는 조형성을 지닌 인물의 묘사, 하늘에
큐우핏의 모습, 또한 지상의 작은 꽃의 섬세한 묘사 등, 그가 얼마나 선배들에게서 충실한 사실을 배웠는지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의 특징은 가는 선인데, 특히 세 미신(神)과 플로라에 있어서 투명한 엷은 옷이 섬세한 몇 개의 곡선들로 더없이 아름다운 조화이며 율동적으로 짜여 있다. 봇티첼리는 세 동방 박사의 예배 장면을 여러 장 그렸는데, 이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장대 한 것으로, 동방의 왕이며 박사들인 세 사람이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새로 나신 구세주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乳香)과 몰약(건위제로 쓰이는 약)을드리고 예배하였다는 마태복음 제2장의 장면이다.
그때의 미술가 전기를 쓴 것으로 유명한 바사리에 의하면 첫 번째의 왕인 중앙의 노인 메르 키 오르는 그때의 국부로 일컬어진 벡 키오이며, 화면의 중앙 전경에 옆으로 보이며 등이 보이는 두 번째 왕 바르타쟈르는 메디치, 그리고 오른쪽에서 맞바라보고 있는 세 번째 왕 가스팔은 국부인 벡키오의 아들 지오반니, 그 배후에서 검은 머리의 풍채 좋은 인물이 쥬리아노, 왼쪽 앞 줄에서 칼을 들고 서 있는 자가 그의 형 메디치가의 주인인 로렌초 라 하였다. 이처럼 세 박사를 비롯하여 그 외의 사람들이 메디치가의 사람들로 그려진 것을 보면 메디치가의 전성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의 인물들을 그림에 그려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감이 넘치는 이 인물들이 주제에서의 인물을 대신하고 있어, 그때에는 보다 현실적인 느낌과 새로운 인상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은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인물로서 위엄이 있으며, 건강하고 잘 생긴 이 사람이 못티첼리의 자화상이라는 데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당시 이 그림이 유명해져서 못티첼리는 로마에 초청되어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리기에 이르렀다. 시스티나 성당의 세 번째 벽화에 해당되는 이 그림은, 구약성서의 민수기 15 장을 그린 것으로 모세의 생애 중의 한 사건을 주제로 한 것이다."우선 화면의 구성을 보면, 중앙에 콘스탄틴 개선문처럼 보이는 로마 시대의 건물이 우뚝 서 있고, 오른쪽에는 고대 건축의 폐허가, 그 뒤에는 고딕식의 작은 거리가 있으며, 왼쪽에는 건물의 입구가 보이고, 그 가까이에 두 척의 배가 정박하고 있다. 이러한 전면에 세 가지의 사건이 그려져 있다. 이 인물들은 세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 고립된 느낌을 주고 있다.
중앙의 제단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모세와 그의 형인 아론에게 반항하는 코라, 다탄과 아비람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들이 사제가 되려고 향로를 들고 있는데, 신의 노여움을 사서 천벌을 받는 내용이다. 모세는 지팡이를 휘두르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제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론이다. 향로의 재를 버리고 있는 그의 아들 에레아 살이 보인다. 봇티첼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그 뒤에 보이는 개선문의 중앙에 라틴어로 기록해 놓았다. 화면의 왼쪽의 그림도 민수기 16 장의 이야기로서, 여호와의 노여움을 산 바로 그 반도들이 모세의 예언과 같이 갈라진 대지의 틈바구니로 산 채로 떨어지는 장면이다. 오른쪽의 무리들은 레위기 24 장으로서 여호와가 모세에 명하여 신을 배반한 자들에게 돌을 던져 벌하는 장면이다.  1483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한때 보수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조잡하여 그림을 망쳐놓았다. 1951년에 그 잘못된 보수는 제거되고 감미롭고 시정에 넘치는 그림의 참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문예 부흥기의 그림은 사람이 방 안에 앉아 있는 그림이더라도 거의 뒤에 창문을 만들어 하늘로 공간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창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는 고개를 약간 숙여 자애로운 미인으로 묘사되어 있고, 성모를 바라보는 예수의 왼손에는 장차 있을 수난의 상징인 가시관과 못 박힌 못이 쥐어져 있다. 오른손은 펼쳐진 성경의 한 대목을 가리키고 있다. 맑게 갠 하늘 저 멀리 숲이 보이고, 봇티첼리의 다른 그림에서와 같이 감미로운 서정성이 넘치고 있다. 그의 다른 성모상에 비해 표현은 단순하고 천사도 보이지 않으며, 성모와 예수와의 다정한 대화가 들리는 듯한 아름다운 그림이다. 매우 길쭉한 네모꼴의 화면은 이런 이야기들을 능숙하고 숙련된 솜씨를 충분히 발회하여 구성하고 있다. 그의 선배들의 영향인 엄격하고 지나친 사실에서 벗어나, 봇티첼리 본래의 모습인 달콤한 시정이 담뿍 담긴 그림이다. 문예 부흥기의 화가들은 어느 장면이든 이상적인 모습으로 미화하여 그렸는데, 가난한 성모도 그때의 최고의 궁중 의상을 입히고 예수나 성모는 물론 절세의 가인으로 꾸며 놓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