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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원형의 그림은 15세기 중엽의 피렌체의 대표적 대작으로 메디치가(家)에 바위로 된 산을 배경으로 하고 성벽 밖의 폐허와 마구간을 뒤로하여, 많은 사람들의 떠들썩한 분위기에 아름다운 푸른 옷을 입은 성모가, 예수를 무릎에 앉히고 몸을 앞으로 굽혀 예물을 주는 노인과 장년, 그리고 젊은 세 왕의 배례에 답하고 있다. 성모의 오른쪽에는 성요셉이 경건하게 노란색과 파란색 옷을 입고 서 있으며, 그 뒤 에는 가난한 목동이 서 있다. 주홍색과 청색, 노랑 등의 선명한 배색이 뒤의 원경이나 군중의 색들에 전해져서, 프라 안젤리코다운 순진한 즐거움이 화면에 가득 차 있다. 예수가 지상에 출현한 즐거움을, 사람들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앞에 있는 인물들이나,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섬세한 사실적 묘사나, 배후 건물의 자세한 명암의 표현이나, 투시도법적인 짜임새 등은 립피의 손이 간 것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프라 안젤리코가 전체의 구상을 하여 그리기 시작하였으나, 1445년 그가 로마로 떠났기 때문에 미완성으로 있던 것을 립피가 완성하였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안젤리코는 1407년, 20세 때 도미니크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가 되었다. 초기에는 같은수사인 로렌초 모나코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독자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신앙심이 깊으며 학식이 높았고, 40세가 넘어 그림에 전념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로렌초 모나코는 안젤리코의 스승이라고도 하며, 그는 고딕의 국제 양식의 화풍이었으나 새 시대의 정신에 민감하였다. 따라서 마삿치오나 알베르티의 혁신적인 업적을 존중하였며, 인물의 표현에 자연을 배경으로 그려 넣었고, 과학적인 원근법을 익혀 공간의 구성을 합리적으로 표현하였다. 인간이나 자연의 모습, 공간의 구조 등은 창조주의 섭리를 담고 있다고 하여, 모든 것을 완전한 형식의 조화로써 표현하려 하였다. 이 그림은 50 세경의 작품으로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며, 맑고 깨끗한 색채와 아름다운 형체를 탁월하게 그렸다.‘16 세기의 미술가 열전’ 저자 바사리는 이를 찬양하여 “그는 그 자신을 초월해서 그의 모든 기교와 지식을 이 그림 속에 담고 있다. 많은 성자나 성녀, 그리고 천사는 그 모양과 표정이 하나하나 달라 특색이 있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일이다. 이 축복된 영혼들이 육체를 갖는다고 하여도 천국에서는 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립피는 젊어서 칼멜 수도원의 수사가 되었다. 처음에 로렌초 모나코에게 사사하여 후기의 국제 고딕 양식을 익혔는데, 특히 섬세한 선으로 아름다운 묘사를 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 되었다. 그의 뛰어난 묘사의 재주는 그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여 감정이나 구도의 과장된 표현과 지나친 부분적인 장식, 명암의 극단적인 대비, 현혹적인 색채로서 통속적인 대중적 취미에 부합하였다. 이 그림은 제단화의 중앙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양쪽의 성히에로니무스, 성 그레고리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 암브로시우스 등 교회의 교부(敎)를 나타낸 그림은 토리노에 있다. 이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는 오른손에 장미꽃을 들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으며, 원근법적으로 그려진 고전적인 대리석 옥좌에 앉아 있다. 아기 예수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지혜의 책이다. 그 특유의 섬세한 선의 서정적 표현이 있으나, 인체의 표현은 조각을 연상하게 하는 풍부한 양감(量感)이 보이고, 기념비적 상을 보는 것 같다. 그의 작품 중, 이 그림에서처럼 내부로부터의 양감을 느끼게 하는 작
품은 없다. 성모나 아기 예수의 머리, 가슴, 몸통 등 입체적 형성은 리피 이후의 작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생각하게 하며, 무릎을 덮고 있는 푸른 겉옷의 흘러내리는 모양이 깊은 그림자와 더불어 시원스럽게 뻗어 여유를 갖게 한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출생한 그는 젊어서 시에나파의 화가에게 배우고 피렌체로 나왔다.'39년에 산타 마리아 누오보 병원의 벽화를 그린 도메니코 베네치아노의 조수로 지낸 일이 있다. 그의 최대의 걸작은 아렛 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벽화 ‘성 십자가의 이야기’로서 아담의 죽음, 솔로몬을 방문하는 시바의 여왕, 콘스탄틴의 승리 등 잘 갖추어 진구성과 세련된 색채로써 표현하였다. 그는 말년에 고향에서 투시 화법(透視畫法)이나 수학에 관한 책을 썼고, 보다 개성적인 사실적 표현과 투시 화법을 배워 잘 소화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그리고 이론적이면서도 감성이 풍부한 이야기의 내용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그는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독특한 매력 있는 작품을 후세에 남겼다. 이 그림은 보르고의 한 수도원의 성당을 위해서 그린 것이라 하는데, 이 그림의 양쪽에 시에나 파의 화가인 지오반니의 성 베드로, 성 바오로의 상이 있다. 중앙 정면에 서 있는 그 위에 날개를 펴고 있는 비둘기를 중심으로 좌우 상칭(相稱)으로 짜인 구도는, 그
앞에 있는 인물이나 배경의 풍경과의 원근 관계가 미묘한 색채로서 정연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이 그림에서 우뚝 선 큰 나무가 세로로 지르고 있는데, 그 옆에는 3명의 천사가 극히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다.

우르비노의 대성당 성기실(聖器室)에 있었던 것으로 왼쪽의 피라트의 의자가 있는 밑단에 ‘보르고 성세플크로의 피에로'라고 적혀 있다. 제작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52년에서 60년 사이로 추정된다. 원경에는 매질을 하는 악당과 매질을 당하는 예수가 서 있고, 앞에는 세 사람의 인물이 크게 그려져 있으나 그것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질서 정연한 원근법에 의한 바닥의 묘사와 천장은 실제의 공간을 보는 것처럼 정확하고 수리적이다.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기둥을 중심으로 근경에 인물을 배치하고 원경에 인물을 넣음으로써, 화면의 구성이 특이하나 건물 바닥의 선은 화면 전체에 부동의 안정감을 주어 굳건하게 잡고, 그 수평선의 바탕 위에 기둥과 인물이 수직으로 서서 천장의 과학적인 투시와 연결되고 있다. 이 그림의 주제인 예수가 멀리 취급되고, 다른 인물이 앞에 크게 취된 이유는 무엇일까? 큰 인물 뒤의 풍경은 예수가 서 있는 공간을 보다 자유롭게 해 주고, 수리적인 정연한 구성을 답답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화면은 잘 짜인 기계처럼 조직적이며 빈틈없이 메워진 부분들이 크고 작은 부분들의 연결로서 정적인 리듬을 지니고 있다. 주제를 설명하기보다는 문예 부흥기의 특징인 원근법에 의한 표현의 시도에 주력한 듯한 그림이다.

이 벽화는 프란체스카의 고향인 몬테르키의 묘지 성당을 장식하였던 것으로, 그곳에 묻힌 그의 어머니를 위한 공양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한다. 1911년에 벽에서 떼어 한때 성세플크로 미술관에 있었으나 1925년에 제자리에 놓였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 직전의 모습으로 극히 드문 주제이다. 크리스트교에서 성모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 즉 인류의 어머니로 숭상하였다. 인자의 어머니이며 고통의 어머니, 또한 어머니들에게 위안을 주는 아기를 낳는 고통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성모가 만삭이 되어 중앙에 서 있고, 키가 작은 천사가 성모를 중심으로 좌우 상칭으로 배치되고, 더구나 천막의 가운데가 중앙에서 갈라져 화면을 더욱 견고한 좌우 상칭으로 하고 있다. 천막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고, 천사가 막을 열어 보이는 것은 중세의 풍습에 따르면 계시를 의미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성전의 장막이 찢어진 예가 있어 그것에서 비롯된 상징인 듯하다. 성모의 왼손에 들고 있는 풀잎은 전통적으로 사용된 승리나 자신, 안심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많은 성인의 조각에 보이며, 특히 도나텔로의 승리의 다비드에서도 그와 같은 상징을 볼 수 있는데, 현재도 모든 고난을 이겨 승리한 진리의 상징으로서 많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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