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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69cm의 커다란 암포라의 겉면에 그려진 그림이다. 올림포스의 심부름꾼 헤르메스는 숲의 요정 시 리노스 쪽으로 다가간다. 그 이름들이 옆에 쓰여 있어 알 수 있다. 헤르메스가 앞으로 뻗은 손에는 사자(使者)의 지팡이와 칸타로스가 들려 있다. 양의 귀와 말의 꼬리를 가진 반수신(半獸神) 시 리노스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의 종자(從者)인데, 오른손에 든 활로 리라의 현을 켜고 있었다. 둘 사이에 사슴 한 마리가 달려와 그들을 쳐다보고 있다. 이 군상은 그 답답한 구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암포라의 곡면이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고, 목에서 어깨로 걸쳐 붙어 있는 두 손잡이 사이의 중앙부는 연속무늬로 꾸며져 있다. 인물 묘사의 양식으로 보아, 이 암포라는 거의 정확하게 연대를 짚을 수가 있다. 그것은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가장 위대한 도화가의 작품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이도 자기가 베를린에 보존되어 있으므로 그에게는 ‘베를린의 화가’라는 현대식 예술가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이 작품은 아마 베를린 화가의 대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재(題材)를 잡은 도기화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가장 훌륭한 그림이다. 이 스키 포스는 많은 아름다운 단지들과 함께 남이탈리아의 노라 근교 스엣스라의 분묘에서 발견되었다. 히에론 왕이 빚고 마크론이 그림을 그린 이 그릇에는 죽은 이 아니면 그 가족의 애완용으로 보이는 작은 동물 모양의 유품이 들어 있었다. 그림의 주제는 트로이 전쟁의 발발과 그 결말이다. 아름다운 헬레네의 유괴로 시작되어 그리스군의 트로이 성 점령, 헬레네와 전부(前夫) 메네라오스의 극적인 만남으로 끝난다. 여러 인물의 표정, 자태, 의상은 아르 카이크 말기의 궁중 풍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타일로 모두 같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나, 주요 인물에는 그 이름이 쓰여 있다. 파리스는 스파르타의 메네라오스의 궁전에서 헬레네를 꾀어낸다. 작은 에로스가 두 사람 사이를 날고,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신부 헬레네의 베일을 고쳐 주고 있다. 오른쪽에는 페이트라는 부인과 헬레네의 아들이 이 죄 많은 두 사람의 출범을 지켜보고 있으며, 이어서 장면은 처참한 트로이 낙성으로 옮겨져 간다. 중국 회화를 연상하게 하는 선묘는 이 화가 마크론의 특색이다. 안으로 육체를 느끼게 하는 의상, 금속의 질감이 나는 헬멧과 방패, 윤기 나는 금발의 빼어난 묘사 등은 생명이 통하는 움직임이 있다. 목이 가늘고 통 모양으로 생긴 레키 토스는 향유 병으로, 원래 다갈색 지었던 것이 B.C. 5세기 후반 이후 백지로 변하여 묘에 바치는 공물(供物)이 되었다. 따라서 그림의 주제는 사자와의 결별(訣別), 명상, 회상 등 애수에 잠긴 것이 많다. 인물은 불그레한 부드러운 선으로 마치 스케치처럼 간결한 터치로 그려져 있고, 머리와 의상에만 옅은 색조로 가볍게 채색하는 데 그치는 그 표현은 그리스 도기화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다. 그리스의 장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사자의 유해를 씻어 향유를 바른 다음 유해실에 안치한 후 가족, 친척이 그 둘레에 모여 조가를 부르며 애곡 한다.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은 각자 레키 토스를 가지고 와서 향유를 뿌리고, 그 병을 유해 옆에 놓는다. 이어서 마차로 출상하고 매장 때 다시 향유를 뿌리고 레키 토스는 묘 속에 부장 하며, 묘비가 세워지면 또 향유를 뿌리고 레키 토스는 부수거나 묘의 대석 위에 놓고 돌아간다. 중앙에 6개의 대석이 있는 꽤 잘 만들어진 묘비, 그 꼭대기는 종려 잎을 그린 팀파눔 모양이 있고, 비신에는 공양의 끈이 맺어져 있다. 그 뒤쪽에 둥근 무덤이 있고 양쪽에 나무가 보인다. 대석 위에는 레키 토스와 오이노코에가 8개나 놓여 있고, 그중 4개에는 올리브의 지환(枝環)이 걸려 있다. 오른쪽에서 여인이 다가와 공양 바구니를 바치려 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성묘 온 여성이다. 왼편에 서 있는 남자 상은 젊어서 죽은 청년의 생전의 모습이다. 이 묘비는 그리스의 사당을 정면에서 보고 그 형을 본떠 만든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석회암의 두꺼운 판에 새겨서, 전체를 회로 밑 칠한 다음 색칠을 하였다. 특히 중앙부 직사각형의 오목한 곳에는 이 묘비 아래 잠든 마케도니아의 전사가 완전히 무장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그 밑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묘비는 시돈이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등 헬레니즘의 주요 도시였던 여러 곳에 많이 보인다. 특히 셀레우코스(Celeukos) 조 치하의 시리아와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조 치하의 이집트에서는 그 왕가의 출신지인 마케도니아에서 수많은 전사들을 고용하여 군비를 튼튼히 하고, 내외의 적에 대처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묘비가 적지 않다. 이들 묘비의 형식은 대략 일정하여 장교의 경우는 승마하고(때로 종자를 거느린다.), 전사는 이 그림처럼 무장 직립의 자세로 그려진다. 부조의 장려(壯麗)한 묘비에 비교하면 석질도 떨어지고 세부의 마무리도 거칠지만, 한편 전성기의 그리스 회화는 말할 것도 없고, 헬레니스틱기의 회화까지도 유품이 거의 없는 오늘날, 그리스 회화의 양상을 살피는 자료로서 매우 귀중한 것이라 하겠다. 이 상은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기 전에 부르고뉴 지방의 오세르 미술관에 있었기 때문에, 오세르의 부인이라 이름하게 되었고, 루브르에 많지 않은 그리스 아르 카이크 시대의 일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얼른 보아서 이집트의 조각 같으며, 실제로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당시 B.C. 650년경, 이오니아는 차차 세력을 확장하여 이집트의 델터 지대에 식민지를 만들었으니까, 이집트의 뛰어난 조각품에 접하고 영향을 크게 받았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분명히 그리스의 숨결이 느껴진다. 가슴의 부푼 정도나 가느다란 허리, 특히 손을 가슴에 얹은 변화, 그리고 표정에는 이집트의 엄숙함도, 크레타의 요염함도 아닌 그리스의 것이 분명하다. 고증 결과로는 그리스 조각의 전설적인 시조 다이달로스(Daidalos) 계통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아테네 태생인 다이달로스는 주로 크레타섬에서 일했는데, 크레타의 미궁 도지었다는 말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때까지 원통 모양의 크소아논(Xoanon) 형식의 인물상이, 그에 의해서 손, 발에 움직임이 생기고 생명감이 넘치는 것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B.C. 6세기의 코레(Kore)의 미소에 선행 하 인간미가 태동한 것이라고 보겠다. 1897년 미케네 성의 아테나 신전 근처에서 발굴되었다. 같이 발견된 다른 부조 단편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것이 도리스식 신전의 메토 우프(metope) 임은 거의 틀림없는데, 어느 신전에 부속되고, 무슨 주제를 나타내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볼록 튀어나온 눈썹과 살구씨 모양으로 뜬 눈, 부푼 코, 두툼한 입술, 모지고 굳센 턱을 가진 이런 얼굴은 족진 머리의 이집트 왕의 얼굴을 연상하게 한다. 늘인 머리의 수직선과 이마를 덮는 감긴 머리의 수평선이 긋는 직사각형으로 둘러싸인 얼굴은, B.C. 7세기 아르 카이크 여성상의 특유한 것이다. 좌상인지, 입상인지, 부인인지, 소녀 인지도 알 수 없으나 머리에서부터 둘러 쓴 히마티온(Himation: 망토)을,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듯이 잡아당긴(아마 왼손으로는 다른 끝을 잡아당기고 있을 것이다) 동작은 무엇인가 움직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스에서 등신의 대조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B.C.7세기 중반 조금 전이었음을 여러 가지 근거에 의해서 짐작할 수 있다. 그 최초의 것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여러 설이 있지만, 적어도 그 하나가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다이달로스 양식’이라 불리는 유품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은 그 입방체 꼴의 조각 방법으로도 ‘다이달로스 양식’의 만기(晩期)에 속하며, 크레타의 영향을 받은 펠로폰네소스 작가의 솜씨로 보인다. 모스코 포로스(송아지를 둘러멘 사람)란 이름으로 알려진 아크로폴리스 미술관의 지보(至寶)이다. 송아지를 어깨에 메고 걷는 모습의 이 청년상은,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기 위해서 자기가 기른 송아지 중에서 제일 좋은 놈을 골라 신전에 나오는 어떤 청년(그 자신일지도 모른다)의 상이다. 정강이는 없어졌으나 오른발과 좌대는 남아 있으며, 그 좌대에 ‘롬 보스’의 봉납임을 새겨 놓았다. 머리도 수염도 가지런히 다듬은 둥근 얼굴, 유난히 큰 눈에는 상감한 자국이 있다. 얇고 야무지게 다문 입술의 미소와 더불어 밝고 순진한 표정이 친근감을 보여 준다. 다부진 몸, 어깨로부터 허벅다리까지 닿는 가운은 앞을 벌어지게 걸치고, 송아지의 다리와 잡은 팔이 , 이것을 만든 조각가의 조형상의 안 점이었으리라. 주인과 얼굴을 나란히 맞대기 위해서 둥그러진 송아지의 목, 희생이라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바치는 이가 가장 아끼는 것이야말로 신도 기뻐할 것일 거다. 이 사람과 이 짐승의 몸과 마음이 하나로 맺어져 있다. 지금도 그리스의 시골길을 걷노라면 이 조각상처럼 양을 멘 농부를 볼 수 있으나, 홀 아르 카이크 미술만이 낳을 수 있는 조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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