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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사모스의 헤라의 모양

love으뜸 2022. 5. 2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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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에서 출토된 것인데 사모스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족진 머리의 모양으로 보아서 거울의 손잡이거나 세발솥(鼎)의 발 아니면 촛대(燭臺)이거나 아무튼 위로 무엇인가를 받치고 있던 물건임에 틀림없다.
사모스섬은 여신 헤라(제우스의 정비)의 성지이며, 이 상도 얼른 보아서 잘 알려진 루브르의 케라 뮤 에스 봉납상을 비롯한 몇 개의 현존하는 ‘사모스의 헤라’의 모양을 상상하게 하지만 왼손을 가슴에, 오른손을 앞으로 한――여기서는 이오니아식의 키톤(Chiton:고대 그리스의 의상의 일종) 끝을 잡고 있지만 자세는 훨씬 후의 '부끄러워하는 비너스’ 나상(裸像) 모양에 가깝고 이 소상도 동방적(東方的) 아프로디테 인지도 모른다.상감해 넣은 눈동자가 없어진 이외에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다. 족진 머리 모양은 받침을 위해서였지 실제로는 이런 머리형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귀밑머리의 좀 튀어나온 털은 당시의 유행이었을까? 사모스섬에서는 얼마 후, B.C. 5세기 초두의 대청동 작가 피타고라스가 탄생하게 된다. 피타고라스는 아마도 로이 코스, 테오도로스 계통을 이어받은 사람일 것이다. 1959년 피레우스항의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이 작품은, 함께 발굴된 2m가 넘는 여신 아테나와 아르테미스 상과 더불어 몇 되지 않는 그리스 브론즈 원작에 새로 추가된 유품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 상은 최고(最古)의 등신 이상의 공동 주조(空洞鑄造) 청동상으로 델포이의 「전차병」및 아르테미시온곶의「포세이돈」과 같은 시대, 아니면 이들보다 앞선 시대의 청동상으로서 그리스 조각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쿠로스상처럼 양손을 옆구리에 내리지 않고, 왼발이 아닌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고 무릎도 가볍게 구부렸다.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은 화살 아니면 월계수 가지일 것이며, 오른손에는 피아 레(술잔)를 들고 있었을 것이나, 손바닥에 남아 있는 조각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눈동자와 젖꼭지, 그리고 입술에는 별도로 다른 금속을 씌웠을 것이고, 평활한 머리끝과 앞머리 부분의 구멍은 월계관 같은 것이 붙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언어에 의해서 신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B.C. 7세기 이래 도화가들도 이 언어 (개념)로 전해지는 신의 심상을 여러 가지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조각가도 하나의 상 속에 신의 본성을 나타내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한 초기의 수많은 신상이 없어졌다가 B.C. 6세기 중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찾아내어, 옛 그리스인이 생각하고 그려 낸 아폴론의 모습을 대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아티카 남부 아나 빗 소스 묘지에서 발견된 상이다. 등신을 넘는 크기의 이 젊은이상은「송아지를 둘러멘 사람」과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팀파눔 상의 중간에 해당하는 시기에만 들어진 것이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양팔을 옆으로 내리고 왼발을 반걸음 내디딘 자세는 당시 쿠로스상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타입이다. 1936년에 발견된 이 상이 단순한 크로스가 아니고, 크로이소스라고 하는 젊은이의 진혼(鎭魂)을 위한 기념상임을 알게 된 것은, 그 2년 후 ‘최전선의 전사(戰士) 중에서 광폭한 아레스에게 목숨을 앗긴 크로이소스의 묘 앞에 애도하소서.'라는 명문이 새겨진 좌대(座臺)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이 언제 어디서 있었던 전쟁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앞날이 창창한 젊은 목숨을 나라(Polis)에 바친 내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 비용을 아끼지 않고 뛰어난 조각가에게 의뢰했을 어버이의 심정을 알 것 같다. 운동으로 단련된 늠름한 체격의 젊음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얼굴의 표정, 복부, 무릎 등에서는 생기와 힘이 넘쳐흐른다. 머리카락, 머리띠, 안구 등에 빨간 색칠의 자국이 보이는 이 상은, 아르카이 크기 청년상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있는 시프노스인 보고(寶庫)의 기둥으로 만든 것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 도시 국가가 신전에 헌물을 봉납하는 풍습이 있어, 큰 신전에서는 그 보물을 받아 두는 창고가 필요했다. 이 시프노스인의 보고도 그런 것 중의 하나로, 델포
이의 아폴론 신전에 이르는 길에 여러 도시의 보고가 늘어서 있는 그 가운데 세워졌다. 풍요를 자랑하던 시프노스 섬사람들의 보고는, 사모스섬의 군대에 공략을 당하기(B.C.525년) 직전에 건립한 것으로 파로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상은 건물의 정면과 양쪽 끝 기둥 사이에 있어, 기둥 대신 들보를 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녀는 얇은 키톤을 어깨에 걸치고 그 위에 히마티온(Himation)을 오른쪽 어깨를 노출한 채로 걸쳐 입었다. 아마「아크로폴리스의 소녀」나 아폴론 신전 동편 팀파눔 여신상처럼 한 손으로 옷자락을 쥐고 다른 한 손은 가볍게 앞으로 내민 자세였을 것이다. 머리 모양, 옷의 주름, 대리석 조법(彫法) 등 모두 에게해의 이오니아 예술의 성격을 띠어다. 머리에는 여신들이 쓰는 통 모양의 관을 얹었는데, 거기에는 춤의 부조와 여자를 약탈하는 세이 레노스의 부조가 있다. 또 위쪽에 소를 습격하는 사자 부조가 있는 에키누스(Echinus:주두의 돌출물)와 4각형의 아바쿠스(Abacus)를 가진 주두(柱頭)가 있어 들보를 떠받고 있다. 1937년 올림피아의 스타디움 북쪽 둑에서 발굴되었다. 아마 보고 지붕의 아크로테리온 상의 머리일 것으로 추측이 된다. 테라코타의 토질, 채색 안료의 성분으로 보아서 이탈리아 남쪽 마그나 그 라에 키아의 슈바 리스인의 보고로 짐작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각 도시에서 신전으로 봉납 되어 온 상을 받아 둘 창고가 필요했었다. 이 창고를 보고라 부르며 올림피아 성역의 북쪽 크로니온 산기슭에 각국의 보고가 12채 있다. 외부로부터 깎아 들어가는 석 조각과는 반대로, 내부로부터 붙여 나오는 소조는 자연히 살붙임이 부드럽고 모난 데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두상은 모든 부분이 둥글둥글 부 더럽다. 이마, 눈썹, 눈 등 거의 층을 만들지 않고 채색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지금은 상당히 퇴색했지만 검은 갈색, 불투명한 빨강, 희끄무레한 올리브색, 검붉은 보라 등을 교묘하게 구분하여 칠했다. 모든 점에서 이오니아계 미술의 성격을 보인다. 이 아크로테리온의 전신이 어떤 모양이었는지——스핑크스인가 아니면 아우라인가 또는 네 레이스나 마이나스인가——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가장자리에 무늬가 있는 키톤에 히마티온을 몸에 걸쳤다. 이러한 옷차림은 아크로 폴리스 봉납 소녀상 중에서도 퍽 드문 것이다. 오른팔은 아마 똑바로 앞으로 내밀어, 그 손에는 신에게 바칠 꽃이나 과일을 들고 있었을 것이다. 따로 새겨서 붙였을 장부 구멍이 팔뚝 쪽에 보인다. 왼손은 허벅다리 근처에서 옷자락을 쥐고 있다. 가슴 벌어진 곳 에키톤 상부가 보이고, 옷단의 채색도 잘 남아 있다. 머리에는 꽃무늬의 채색이 남은 관을 쓰고, 머리끝에는 메니스 코스라는 바늘이 피뢰침처럼 서 있다. 새가 앉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란다. 이 상은 뒤의 키오스의 상과 비교해 보면, 앗티카와 이오니아(동그리스)의 작품상의 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키오스 상의 전부가 조용하고 부드러운 모델링인 것에 비해서, 이것은 광대뼈에서 턱으로 파임이 깊고, 눈썹이나 입술이 붉어져 딱딱하다. 머리도같이 장식적이고 형식적이면서 후자는 부드럽게 물결치고 전자는 날카롭고 모진 각의 윤곡을 나타낸다. 키오스 상의 우아하고 섬세한 양식화에 대해서, 이것은 인체의 유기성을 파악하여 간결한 표현을 하고 있다. 연대도 이것이 조금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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