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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녀상은 상반신과 다리 부분, 그리고 대석만이 남아 있고 허리에서 무릎 바로 위까지의 부분은 없어졌다. 대석 옆구리에 ‘다리아 르코스 사람 에우튜디코스 봉납’이라는 명문이 있어 제목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 어느 아버지가 딸의 소망을 위해서 봉납했을까? 자세, 복장, 그리고 수호 여신에게 바친다는 점에서는 다른 아르 카이크 소녀상들과 같지만 많은 점에서 또 다른 독창성을 보인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입술의 표현인데, 입 끝이 위로 올라간 소위 아르 카이크 스마일(archaic smile)과는 반대로 입 끝이 내려가, 야무지게 다문 입가에는 엄숙한 기운마저 감도는 것이, 이미 아르 카이크를 벗어난 느낌이다. 또 한 가지는 목의 옆쪽에서 등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머리로 가려져, 납작하게 입체감이 나지 않는 것이 종래의 소녀상이었으나, 이 상은 머리, 목, 몸통 등 모든 것이 원통 모양으로 두께가 있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다. 가슴도 두툼하고 왼쪽 어깨는 키톤의 소매를 벗겨 육체가 나오도록 표현했다. 얼른 봐서는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지만 흉곽의 곡면, 등뼈의 오목함, 히마티온 속의 팔의 두께 등에 세심한 주의가 기울어진 것을 읽을 수 있다. 이 유명한 부 즉 [보스턴의 옥좌(玉座)」는 남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로마에서 비교적 가까운 장소에서 발견되었으며, 공화정 말기 또는 제정 초기에 사당(祠堂)의 장식으로서 남이탈리아에서 운반되어 왔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르 카이크의 여성상에서 볼 수 있는 옷을 입은 복잡한 표현은, 침착하고 간소한 복장으로 변하였고 머리도 매우 자연스럽다.
나체의 남성은 한쪽 다리에 중심을 둔 모습으로, 이는 고전기의 신(神) 또는 경기자나 청년의 표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낸 장면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여기에는 아도니스의 혼에 대한 사랑의 여신과 명부의 여신과의 싸움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이「보스턴의 옥좌가 놓인 제단(祭壇)은 아프로디테의 부활의 힘에 대하여 봉납된 것일 게다. 옥좌(玉座)의 오른쪽 옆면에는 젊은이가 베개에 기대어 하이프를 타고 있다. 그의 얼굴이나 나체(裸體)는 파르테논 시대의 근접을 느끼게 하나 그 비례의 부자연스러움은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조각의 조그만 지방성을 나타내고 있는 성싶다. 옥좌의 왼쪽 옆면에는 얼핏 보기에 하녀인 듯한 늙은 여인이 손에 무엇인가를 가지고 앉아 있지만, 후세(아마 로마 시대)에 그 가진 물건이 삭제되어 버린 것 같다. 이 여성상은 고대의 기념비적인 조각 중에서 노령(老齡)을 표현한 최초의 유례(類例)이다. 사로니코스만(灣)에 떠 있는 아이기나섬의 동쪽 해안(海岸) 대지(臺地)에 서 있는 도리아식의 아파이아 신전(神殿)은, 그의 게이블을 장식(裝飾)하는 대리석으로 된 조각 군(彫刻群)에 의하여 알려져 있다. 그 주제(主題)는 동서면(東西面)이 모두 이 섬의 선조(先祖)의 훈공(勳功)을 기리는 트로야 원정(遠征)의 이야기이며, 특히 동서(東西)는 제우스와 하신(河神)의 딸 아이기나와의 사이에 이 섬에서 출생한 아이 아고스(그 때문에 이 섬이 아이기나섬이라고 이름 지어졌다)의 아들 테 라몬이, 그의 친구 헤라클레스와 더불어 계획한 최초의 트로야 공략의 장면을 취급하고 있다. 여기에 도시된 상(像)은 동쪽 게이블의 오른쪽 구석(右 )에 놓인 것으로서, 영웅(英雄) 헤라클레스가 적(敵)을 향하여 활을 들고 지금 막 화살을 쏘려고 하는 순간(瞬間)을 포착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는 머리에 네메아의 사자의 털가죽(毛皮)을 둘러 쓰고, 짧은 키톤 위에 가죽으로 만든(革製) 갑옷을 입었으며,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 밀고 쪼그려 앉아 있다. 활을 당기는 팔, 체중을 받치는 다리의 근육(筋肉)은 긴장(緊張)되어 힘차게 부풀어 있다. 아파이아 신전(神殿)의 게이블은 그리스의 대형 게이블 군상(大型薄棋群像) 중에서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의 게이블에 이어 보존 상태(保存狀態)가 매우 좋으며, 또한 아르 카이크 미술에서 엄격 양식(嚴格樣式)으로의 이행기(移行期)를 대표하는 그리스 조각상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미상이나 오나 다스가 만든 것이라는 설(說)도있다. 1887년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출토된 이 아름다운 청년의 두상(頭像)은 머리(髮)에 남아 있는 노란색의 채색의 흔적으로 미루어 보아 금발(金髮)이었음이 분명하며 그러므로 ‘금발 청년의 머리(金髮靑年頭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카락(髮)은 머리(頭部)의 꼭대기에서 파상(波狀)을 이루며 사방으로 늘어져 있고, 앞쪽 머리카락 끝은 말려져 있으며, 이마의 반쯤까지 내려와 있다. 길게 땋아 내 두 가닥의 머리꼬리가 머리 뒤쪽에서 교차(交差)하여 좌우(左右)의 귀(耳) 위쪽을 통하여 앞쪽 머리(前髮) 아래 숨겨져 있다. 굳게 다물고 있는 입 언저리에는, 이미 아르 카이크 스마일은 사라졌으며, 그의 표정에는 무엇인가 깊은 사념(思念)에 빠 있는 듯한 침울(沈鬱)한 기미(氣味)가 엿보인다. 아주 약간 오른쪽으로 돌린 듯한 머리의 경사, 뺨이나 이마 등의 단정한 살 붙임, 그리고 좀 무겁게 느껴지는 눈동자 등이 이와 같은 인상(印象)을 조장(助長) 해 주고 있다. 눈동자나 눈썹은 검정으로 그리고 입술은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양식(樣式)으로 보면 앗티 카파(派)의 작품들과 공통된 점이 있으나,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神殿) 서쪽 게이블의 중앙에 서 있는 아폴론과 유사한 것으로 미루어, 펠로폰네소스의 조각가의 작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하여간 이 아름다운 청년의 금발 두상은 인상(印象) 깊은 표정(表情)을 지닌 걸작(傑作)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출토된 청동제 청년의 두상이다. 눈썹과 입술에 붉은빛 나는 구리가 입혀져 있으며, 눈의 흰자위는 법랑질을 끼우고 눈동자는 갈색에 검은 동공을 찍었다. 속눈썹은 심었던 것으로 그중 몇 개가 왼쪽 눈에 지금도 남아 있다. 콧등이 반듯한 큰 코, 다부지고 잘생긴 턱, 야무지게 다문 입은 아랫입술이 약간 튀어나왔다. 머리는 이마에서 말아 올렸고, 뒤쪽은 크로뷰로스라는 스타일로 쌓았다. 볼 언저리의 붉은색은 녹슬기 전의 구리색이다. 이러한 표현에서 빚어 나오는 진지하고 품위 있는 표정은, 이제까지 만들어진 다른 청년의 두상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것은 소위 '엄격 양식'에 속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면서 아티카 이외의 작풍을 보이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프랑스의 코리뇽은 이 작품에 대해서 말하기를 ‘펠로폰네소스 미술의 전형을 일찍부터 보이는 것’이라 지적하면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의 서쪽 팀파눔의 아폴론과의 닮음을 말하고 있으며, 도이칠란의 프루트 벵 그레르는 이것을 ‘아르고스 사람 아게라 이다스의 제자인 헤기아스가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떻든 이것은 앗티카에서 활동하던 아르고스 사람의 작품이 아니면 아르고스 시큐온의 영향을 받은 아티카의 작품이며, 이오니아계와 도리스계의 융합에서 나온 것으로서 아티카 고전기를 예고하는 작품으로 뜻이 크다. 맛티카 반도의 최첨단, 수니온의 아테나 성역에서 1915년에 발견된 경기 우승을 감사하는 봉납 부조이다. 아직 젊은 소년이 오른손의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우승관을 스스로 머리에 쓰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그 관은 틀림없이 월계수 잎 모양을 따로 금속으로 만들어버리며 아래의 나란하게 보이는 구멍에 끼워서 만들었을 것이다. 왼쪽 팔은 뒤쪽으로 내려뜨리고 있으나, 넓이뛰기용의 장대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운동 기구를 가지고 있었을 게다. 어깨에 힘을 주어 긴장하고 있는 상태로 봐서 무거운 물건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가슴은 정면을 향한 것에 가깝지만, 그러나 투시 도적으로 축소되어 있다. 이와 같은 비스듬히 한 동체(胴體)를 나타낸 부조로서는 가장 일찍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 아래의 머리는 소녀와 같이 부드러운 물결을 그리며 귀를 덮고 있다. 두꺼운 눈꺼풀에 둘러싸인 눈, 높은 코, 가볍게 다문 조그만 입 등 이와 같은 진실한 풍모는 아크로폴리스 미술관의 「크리티오스의 소년」이나「금발 청년의 머리」를 생각하게 한다. 표현 양식으로나 제작 연대에 있어서나 양자는 극히 가깝다. 이 부조는 이오니아의 감화를 받은 앗티카 작가의 손에 의한 것일 게다. 이처럼 정성 들여 갈아 낸 파로스 대리석의 표면은 매우 아름답다. 윤곽이나 살붙임이나 모두 단정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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