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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구보다 훨씬 작은 편이나 채색이 가장 잘 보전되어 있으며, 대리석은 키오스섬 산이다. 작품도 이에 알맞게 되어 있어 키오스섬 제작설도 있다.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 B.C. 560~527년)와 그의 아들들(B.C. 527~510년)의 치세에는 동방에서 많은 이오니아계 시인, 조각가, 도화가가 아테네에 와서 활약하고 있었고, 아티카 미술이 이오니아의 영향을 짙게 받아 전개되던 시대였다. 소녀는 실로 뜬 키톤 위에 히마티온을 걸쳤는데 색깔이나 무늬가 매우 화사하다. 히마티온의 색은 지금은 녹색으로 산화했지만 밝은 군청색이고 꽃을 여기저기 흩은 무늬가 아름답다. 왼쪽 겨드랑이에서 오른쪽 어깨로 올려 걸쳐 입은 것도 변화가 있다. 붉은 보라의 메 안델과 십(+) 자 무늬를 파란(지금은 녹색 색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폭넓은 옷자락은 전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아래쪽에서 밝아진 키톤도 배에서 왼쪽 허벅다리로 폭넓은 가장자리 무늬가 보인다. 소녀는 그 끝을 가볍게 왼손으로 잡아 올리고 있는 모습이 우아하게 느껴진다. 이마에 장식적인 물결 모양을 나타내는 머리는, 3단씩의 송이를 좌우의 가슴에 늘어뜨렸다. 종려 잎 무늬, 연꽃무늬로 채색한 머리 끈에는 7개의 구멍이 있는데, 그것은 금속의 장식이 붙어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배면에는 신체의 기복을 대강 나타냈을 뿐 두발도, 옷자락도 평활하며 표정도 부드럽고 우아하다. 잘 알려진 아리스 티온의 묘비이다. 잔주름이 있는 키톤을 입고 그 위에 갑옷을 둘렀으며, 앗티카식의 투구를 쓰고 정강이에 가리개를 댔다. 똑바로 세워진 창을 왼손으로 쥐고, 왼발을 조금 내딛고 서서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오른팔은 자연스럽게 늘어뜨렸으며, 머리는 나선형으로 꼬아 이마와 목덜미에 가지런히 늘어뜨렸다. 머리, 수염, 입술, 그리고 배경에는 빨간 색칠이 지금도 남아 있고, 투구에는 파란 칠의 흔적이 보인다. 얇은 부조이면서 살결의 표현은 섬세하고 왼손 조각에는 꼼꼼한 마음 씀씀이 엿보인다. 발로 딛고 있는 바로 아랫부분에 ‘아리스토 크레스 작’, 그리고 대석 전면에 '아리스 티온의 것'이라는 각문이 있다. 쿠로스라고 말하는 환조의 묘상과 나란히 앗티카에 부조 묘비가 생기고 나서 반세기 정도 지내 오는 동안의 가장 우수한 직립 측면 부조 묘비일 것이다. 아르 카이크 미술은 내적인 진실의 표현을 위해서 외면적인 상사성(相似性)을 희생하면서, 순간의 현상적인 표현을 초월한 사물의 본질을 나타내려 했었다. 자연의 외면적 묘사와 양식화가 조화롭게 융합한 클래식 작품의 완전함보다도, 오히려 우리들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이러한 진지한 노력 때문이 아닐까? 아티카의 쿠로스 (Kouros) 형 환조 묘상 중에서 가장 새로운 출토품이고 그 연대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봄, 앗티카의 메 소게 이아 어느 밭에서 우연히 발굴되어 그 땅의 소유주가 아테네 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다. 발밑 돌이 딱 들어맞게 끼워진 좌대석에 ‘아리스토디코스의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B.C. 566년 아테네 최대의 제사인 판 아테 나이아제가 대규모 행사로 그 면모를 혁신할 무렵, 8명의 신관 중에 아리스 토디 코스라는 이름이 보인다. 이 사람이 이 상주(主) 아리스 토디 코스의 조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뒷받침할 자료는 찾아볼 수 없으나, 어쨌든 이 묘상의 주인은, 상의 모양이나 작풍으로 보아 B.C. 500년 조금 전에 25살쯤 해서 죽은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나 장군 테미스토 클래스와 나이가 엇비슷한 명문의 청년으로 짐작된다. 그 이름의 아리스토는 귀족을, 디코스는 정의를 뜻한다. 크로이소스 묘상과 비교해 보면 20년 정도의 사이에, 아티카의 조각가들이 대상을 날카롭게 보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손재주가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벌써 어느 의미로는 초상(肖像)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개성적인 용모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출토된 작은 청동상이다. 큼직한 새털 장식이 달린 투구를 썼는데, 그 장식에는 백조 머리의 지주가 붙어 있다. 키톤 위로 히 마 티온을 걸치고 그 위에 또 금빛 나는 아이기스를 입었다. 아이기스는 염소의 껍질로 만든 마고자 같은 가슴받이인데, 아버지 제우스로부터 받은 아테나 특유의 장구이다. 신화에 의하면, 여신 아테나와 해신 포세이돈은 아테네시의 소유를 둘러싸고 서로 다투다가, 시민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어 결판을 내리기로 했다. 포세이돈은 아크로폴리스의 바위산을 삼지창으로 쳐서 바닷물이 솟아나게 하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심었다. 아테나의 승리였다. 이것이 올리브 재배의 기원이 되었으며, 아테나는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었다.페르시아 전쟁 후 피디아스는 파르테논 내실에 아테나 파르테노스를 만들어 세운 외에, 아크로폴리스의 중앙에 높이 10m의 아테나 프로마코스를 만들어 세웠다. 피레우스에 입항하는 배에서도 그 창끝이 번쩍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고 한다. 왼손에 방패, 오른손에 창(방패와 창은 없어졌다)을 들고 있이 소상은, 그보다도 3,40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크기도 30 분의 1밖에 안 되는 소품이다. 그러나 이미 아르 카이크를 벗어나 클래식으로 접어든 당당한 품격을 지니고 있다. 올림피아는 그리스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지 중의 하나이다. 아직 신전도 없던 아 득한 옛날을 미술사의 처지에서 기하학 양식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그때에는 말, 소, 양, 새 등의 작은 청동상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신에게 바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 후 B.C. 7세기 말에 헤라의 신전이, B.C.5세기 중기에는 제우스의 신전이 세워져, 헬레니즘부터 로마 시대까지 융성의 극에 달하게 된다. 19세기에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올림피아 발굴로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된 유품은 청동 제품만 해도 4000점이 넘는다. 이 머리는 체구보다 퍽 작은 편인데, 올림포스의 주신이며 많은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인 제우스를 나타낸 것으로, 올림피아의 성역에 헌납된 수많은 제우스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앞머리는 이마 위에서 두 줄로 감아올렸고, 뒷머리는 가지런히 땋아서 두 개의 리본으로 잡아맸고, 얼굴을 둘러싼 턱수염도 보기 좋게 다듬었다. 눈알이 없어졌기 때문에 점안(點眼)이 안 되어 보이지만, 수염에 둘러싸인 입가에는 자애로운 웃음이 감돌고 있다. 이 두상의 동체 부분은 입상이었는지 좌상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B.C. 5세기 중간 피디아스(Pheidias)가 황금 상아의 제우스상을 만들어 새로운 전형을 창조할 때까지 대략 이러한 얼굴형이 표준이었던 것 같다. 순수한 펠로폰네소스적 작품이며, 아르 카이크에서 점차 엄격 양식으로 이행될 즈음의 작품이다. 아르 카이크 시대에는 청년상(Kouros)과 더불어 소녀상(Kore)도 만들었다. B.C, 6세기 말 30년에서 B.C, 5세기 초에 걸쳐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게 헌납되었던 젊은 소녀상들 중 몇 개가 지금 아크로폴리스 미술관 1실에 그 청순함을 자랑하고 있다. 이 소녀상은 아테네에서 ‘성스러운 길’을 따라 약 22km 떨어진 곳에 있는 밀교(密敎)의 성지 엘레우시스에서 나온 체구보다 퍽 작은 소녀의 머리이다. 그 눈은 앞에서 설명된 쿠로스나 아크로폴리스의 소녀상처럼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입술의 끝은 약간 올라가 있으나 그것은 이제 소위 아르 카이크 스마일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비웃음같이 느껴지는 것은 사진의 각도 탓일 것이나 실은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소녀와 같이 막 피어 오르는 젊음이 아니고, 젊으면서도 언젠가는 죽을 운명을 자각하는 생각 깊은 표정이다. 엘레우시스 밀교(密敎)의 내용은 확실하게 전해지지 않아, 규명된 바를 여기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죽음과 재생에 관계되는 신앙이었음은 상상할 수 있다. 그 의식은 황홀경 속에서 죽음의 못(淵)을 보며 내적으로 재생한다는 교리였을지도 모른다. 이 소녀도 1주일 남짓한 밀의(密儀)에 의해 정화된 것(뮤스타)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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