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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성지 엘레우시스에서 나온 대부조이다. 봉납 부조(奉納浮彫)로서는 이례적인 크기로서 현존 유품(現存遺品) 중에서는 가장 크며, 그 크기는 이 부조의 종교적 의미의 크기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크기에 비해서 부조는 얕은 편이다(가장 깊은 곳이 5cm 정도밖에 안 된다). 중앙에 발가벗은 소년이 경건한 모습으로 서 있으며, 앞에 서 있는 여신의 손에서 무엇인가를 받으려 하고 있다. 앞에 있는 여신 데메테르는 왼손에 기다란 지팡이를 가지고, 오른손에 든 것을 소년에게 주려고 하고 있으며, 소년의 배후에 있는 여신 페르세포네는 오른손을 소년의 머리에 얹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금속으로 만든 관을 소년의 머리에 씌우며 축복하고 있었을 게다. 세 사람이 모두 끈이 달린 샌들을 신고 있는데, 소년의 것은 긴 여로를 느끼게 한다. 주제는 뚜렷하다. 대지 여신(大地女神) 데메테르가 전 세계의 인간에게 곡물 재배를 가르친 것과 같이, 엘레우시스의 왕자 토리 프토 레모스(三回耕作이란 뜻)에게 보리 이삭을 주는 장면이다. 해마다 9, 10월에는 엘레우시스의 제전이 성대하게 열리며, 아테네에서 엘레우시스로 가는 성도(聖道)를 긴 행렬(行列)이 이어졌다고 한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여신 데메테르가 토리 프토 레모스에게 주고 있는 보리 이삭은, 물감으로 그려져 있었거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을 게다. 여기서는 세 사람을 직립에 가까운 모양으로 늘어놓고 있으나 자세, 옷 무늬는 미묘한 변화를 지니고 있다. 파르테논 시대의 아티카 거장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루브르에는 헬레니스틱기의 것과 거의 같은 형의 아프로디테(그리스어:로마 신화에서는 비너스라고 불린다.)의 아름다운 토르소(머리, 팔, 다리 등이 없는 몸뚱이만의 조각)가 둘이 있다.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 조각의 모사가 성했었다. 로마 문화 자체가 그리스의 계승 모방이었으며, 로마인의 그리스 조각에 대한 찬미는, 헬레니스틱기 이전으로는 소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헬레니스틱기의 미감은 ‘신’의 상을 만드는 것보다 그 이름을 빌려 인간상을 만드는 방향으로 중심이 옮아, 아프로디테는 여체(女體) 그 자체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게 된다. B.C.4세기까지는 의상을 걸치던 아프로디테는 점점 나체가 되어 간다. 그리하여 프락시 텔레스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전라(全裸)를 만들었다. 자살까지도 향락주의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였던 로마의 그리스 찬미는 물론 육체미를 주 대상으로 하였으며, 로마가 모사한 수많은 그리스 원작 중 남상보다 여상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로마 시대의 모작 중에는 물론 좋은 작품과 미흡한 작품들이 있다. 이 「아프로디테의 토르소」 역시 프락시 텔레스의 진작(眞作)인지 아닌지를 굳이 가릴 수는 없지만, 분명한 모작(模作)이라 하더라도 실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루브르의 또 하나의 토르소보다도 보다 강하게 프락시 텔레스를 느끼게 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디아두메노스란 승리의 머리띠를 메는 청년이라는 뜻이다.
이 상은 폴리 클레이토스(Pol-ykleitos)의 작품을 모각(模刻)했다는 내용이 로마 시대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이 조각상은 머리, 양팔, 정강이와 발 부분만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몸통과 허벅다리는 석고로 보완한 것이다. 지금 아테네에 있는 델로스 섬 출토의 모작과 사소한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들어맞기 때문에 이를 석고형으로 떠서 맞춘 것이다. 따라서 이 모상에서 볼 만한 부분은 현존 모작 중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머리 부분이다. 원작자 폴리 클레이토스는 피디아스(Pheidias), 뮈론(Myron)과 더불어 그리스의 예술을 인류 최고의 클래식으로 올려놓은 대천 재이다. 아르고스 출신인 그는 쿠로스에 전념하면서, 나체 남자 입상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주제 속에, 조형적이며 덕성적 완벽을 구현한 카논(Kanon)을 만들어 냈다. 카논은 인체 각부의 비례, 전신의 균형을규명한 가장 이상적인 인체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눈꺼풀의 날카로운 새김, 야무지게 다문 상하 입술의 새김, 가느다란 고수머리의 새김 새 등 모든 것이 원작의 청동 기법 그대로이다. 아티카에서는「아리스 티온 묘비」 등을 마지막으로 사치 금지령에 의하여 훌륭한 조각이 있는 묘비는 모습이 사라진다. 그러던 것이 페리클레스에 의하여 아크로폴리스 부흥과 때를 같이하여 B.C. 440년경에는 재차 우수한 부조를 곁들인 묘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이후 B.C. 4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아티카 조각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만큼 성행하였다. 아르 카이크의 묘비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의 직립 측면상을 부조한 기다란 것이었으나, B.C. 5세기 후반에 새로이 만들어진 것은, 아티카 외에 주로 섬 등에서 만들어진 묘비(墓碑)나 봉납 부조 등의 영향 아래, 단신이더라도 흔히 좌상 또는 2인 이상의 인물을 배치한, 폭이 있는 긴 네모 모양으로 되어 있다. 비면의 윗부분의 장식도 그에 따라 당연히 변화하였다.
이 묘비는 아티카의 ‘바리’에서 발굴된 아름다운 묘비이다. 윗부분에 새겨진 묘비명(墓碑銘)에 의하여 양친(兩親) 보다 앞서간 무네 사고라와 니코 카레스(男妹)의 묘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이 무네 사고라는 「엘레우시스의 대부 조」(도판 44)의 페르세포네를 생각하게 한다. 향(向)은 반대이나 안쪽의 다리를 받침(支脚)으로 하여 오른쪽 다리는 뒤로 빼고 있고, 바로 앞의 오른팔은 내려뜨렸으며, 저편의 왼쪽 손에 들고 있는 애완용 작은 새를 어린 동생에게 주려 하고 있다. 물론 작풍이 전혀 다르기도 하겠지만 자세는 매우 동적이며 옷자락, 머리, 얼굴 등도 깊이 새겨져 있다. 머리도 팔도 없는 세 여인의 조각은 파르테논의 동쪽 팀파눔을 꾸미고 있던 군상으로, 왼편으로부터 레토, 디오네, 아프로디테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레토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은 여신이며, 디오네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어머니이다. 팀파눔의 모양에 맞추어 오른쪽으로 경사진 삼각형으로 꾸며졌는데, 자태나 구성이 극히 자연스럽다. 이 군상의 왼쪽, 그러니까 팀파눔의 중앙부에는 여신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로부터 태어난다는 전설의 장면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파르테논의 여러 조각 중에 피디아스(Pheidias)가 직접 제작했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이 작품은 가벼운 리듬이 흘러내리는 옷 주름의 아름다움, 그것을 통해서 느껴지는 육체의 따스한 무게, 그리고 세 여인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자태가 빚어내는 우아함………실로 그리스 조각의 진수라 하겠다. 디오네에게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아프로디테는, 오른쪽 어깨의 옷이 벗겨져 내려와 그 안에서 어깨와 가슴이 내다보이고 축 늘어진 자태가 어딘지 염려(艶麗)함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장중 단정하여 클래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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