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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

마리아의 결혼식

love으뜸 2022. 6. 18.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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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는 움브리아 지방에서 성장하였다. 페루 지니 유파 가운데 그는 다른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감정이 풍부한 스승의 방식을 완전히 습득해서 바사리의 판단에 따르면 스승과 제자의 그림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라파엘로처럼 천재적인 제자가 스승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경우는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베로키오의 <예수 세례식>에서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가 독창적인 특성으로 인해 즉석에서 눈에 띄고, 미켈란젤로의 소년 시절 작업은 다른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인 데 반해, 처음 시작할 무렵의 라파엘로는 페루 지니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는 피렌체로 온다. 미켈란젤로가 젊은 시절의 위대한 업적을 모두 이룬 순간이었다. 그는 <다윗을 완성하고 <카시나 전투>의 작업을 완료했다. 그동안 레오나르도는 전투 장면 밑그림을 계획하고, <모나리자>에서 유례없는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는 이미 생애의 절정에서 빛나는 명성을 얻고 미래의 인간으로서 성숙한 연령의 입구에 있었다. 라파엘로는 채 스물도 되지 않았다. 이 위대한 거인들 곁에서 그는 어떤 운명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페루지 노는 아르노 강변에 위치한 피렌체에서도 평이 좋은 화가였다.
아마도 젊은 라파엘로에게 페루 지니 방식의 그림을 그리면 언제든 고객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라파엘로가 두 번째 페루 지니 어쩌면 더 나은 페루지 노가 될 수 있으리라고 용기를 북돋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그림들은 그보다 나은 독자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피렌체 특유의 현실 감각을 나타낸 흔적도 없고, 감성에만 편중되었으며, 아름다운 선들을 다루는 방식만 갖춘 터라 위대한 대가들의 경쟁에 뛰어들 그 어떤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이 갖는 독특한 재능이 있었으니, 즉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재능, 내적인 변화의 능력이었다. 그는 움브리아 유파의 특성을 옆으로 밀쳐놓고 전적으로 피렌체 식의 과제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크나큰 첫 시험을 견뎌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라파엘로의 짧은 생애를 돌이켜보면, 다른 어떤 사람도 그토록 짧은 기간에 그와 비슷한 발전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움브리아의 몽상가가 위대한 극적 장면을 그리는 화가가 된 것이다. 대지에서 부끄러운 감촉만 받아들이던 젊은이가 힘찬 손으로 현상을 붙잡고 인간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페루 지니의 선(線)적인 방식은 회화적인 양식으로 바뀌고, 고요한 아름다움만 지향하던 일방적인 취향은 강력한 대중 동작 묘사로 바뀌었다. 바로 남성적인 로마의 대가였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처럼 섬세한 신경과 세밀한 특성을 갖지 못했고, 미켈란젤로의 힘은 더더욱 없었다. 그는 중간의 정도와 일반적으로 이해가 되는 특성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런 개념이 하찮은 것으로 오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하는 말이다. 저 행복한 중도의 정서는 우리에게 아주 드문 것이어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파엘로의 열려있고 명랑하고 친절한 개성보다는 오히려 미켈란젤로에게 접근하는 것을 더 쉽게 느낀다. 그러나 라파엘로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 즉 그의 본질에 있는 매혹적인 사랑스러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의 작품에서 설득력 있게 빛나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라파엘로의 예술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페루 지니를 페루 지니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에 페루 지니를 찬양하는 일은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으려고 할 경우 절대로 잘못되지 않을 지름길이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하다. 페루지 노는 감성 풍부한 얼굴을 거의 기술자처럼 되풀이해서 그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멀리서만 보아도 그 얼굴을 피하게 된다. 하지만 이 머리들 중 단 하나라도 진짜로 느끼게 되면 15세기에 이 특이하게 깊고도 영적인 시선을 쟁취한 사람이 대체 누구였는가 물어보게 된다. 조반니 산티(Giovanni Santi)는 운율을 맞추어 쓴 연대기에서 페루 지니와 레오나르도를 나란히 놓는 이유를 두 사람이 '나이도 같고 사랑 받음도 같기에 라고 설명한다.
그 밖에도 페루지 노는 그 이후로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는 선의 서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피렌체 사람들보다 훨씬 단순할 뿐만 아니라 좀 더 고요하고 조용히 흐르는 것에 대한 감성을 지녔다. 그것은 토스카나 사람들의 동적인 특성과 15세기 후기 양식의 장식적인 곡선과는 눈에 띄게 상반되는 것이다. 피렌체 바디아에 있는 필리피노의 <성 베르나르두스 앞에 나타난 성모>와 뮌헨 미술관(피나코텍)에 있는 제목이 같은 페루 지니의 그림을 비교해보자. 필리피노(리피)의 그림에서 선은 온통 구불거리며 수많은 사물이 혼란스럽게 뒤엉킨 채 묘사되어 있다. 페루지노의 그림에서는 완벽한 정적, 고요한 선들, 먼 곳으로의 전망을 열어주는 고귀한 건축물, 지평선에는 아름답고 아련한 산의 선, 하늘엔 완전히 순수하고 모든 것을 채운 침묵이 있어서 저녁 미풍이 가느다란 나무의 잎사귀를 흔들면 그 속삭임이 들릴 것만 같다.
페루지 노는 풍경의 분위기와 건축물의 분위기에 대한 감각이 있다. 그는 단순하고 널찍한 홀을 기를란다요처럼 그림의 장식으로 만들지 않고 효과 만점의 공명을 일으키도록 만들어냈다. 그 이전의 어느 누구도 인물과 건축을 그토록 잘 결합시키지 못했다(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1493년의 〈성모>를 비교해볼 것). 그는 건축 감각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는 여러 명을
한 곳에서 묘사해야 할 때 기하학적 도식에 따라 구성하였다. 1495년 작품인 <피에타>는(피티 미술관) 레오나르도가 공허하고 생기가 없다고 비판하기는 했지만, 당시 피렌체에서 아주 독특한 의미를 지녔다. 단순화와 법칙성이라는 원칙을 가졌던 페루지 노는 고전 미술이 피어나기 직전의 중요한 요소이며, 또한 그를 통해서 라파엘로의 길이 얼마나 단축되었는
가를 우리는 알게 된다
<마리아의 결혼식> <밀라노, 브레라)은 1504년이라는 날짜를 달고 있다.
이것은 21세 예술가의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페루 지니의 제자로서 스승에게서 배운 것을 여기서 보여준다. 페루 지니와 같은 대상을 다루었기에 우리는 독창적인 부분과 배운 부분을 더 잘 구분할 수 있다  전체 구도는 거의 같다. 다만 라파엘로는 두 측면을 뒤바꾸어서 남자들이 오른쪽에, 여자들이 왼쪽에 오게 만들었다. 그 밖의 차이는 미미하다. 그런데도 판에 박은 듯이 작업하는 화가와 이미 양식 감정을 가지고 전래되어오는 모티프를 아주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생명으로
채우는, 더 섬세하고 뛰어난 제자 사이의 차이가 두 그림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우선 모티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결혼식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과는 약간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두 개의 반지가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내밀고 신부는 손가락을 그 안에 끼우는 중이다. 사제는 두 사람의 손목을 잡고서 그것을 지휘하고 있다. 이 주제가 화가에게 어렵게 여겨지는 것은 그 과정이 작고 사소하다는 것이다. 페루 지니의 그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면 아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여기서 라파엘로는 독자적인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그는 마리아와 요셉을 멀리 떼어놓고 그들의 입장을 다르게 만들었다. 요셉은 이미 자신의 일을 다 하고 난 참이다. 그는 반지를 그림의 한가운데로 내밀고 있고, 이제는 마리아가 움직일 차례다. 그리고 주의력은 온통 그녀의 오른팔 동
작에 맞춰져 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접합점이다.
이제 라파엘로가 어째서 두 그룹의 위치를 바꾸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중요한 팔을 앞쪽으로 오게 해서 방해받지 않고 보여주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동작의 방향은 사제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사제는 신부의 손목을 잡은 인물로서, 페루 지니의 작품에서 보듯이 뻣뻣한 중앙선으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개성의 힘을 다하여 이곳의 사건을 주도하고 있다. 그의 상체의 움직임을 통해서 아무리 먼 곳에서라도 사건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라파엘로는 이야기를 그림에 어울리는 현상으로 만들어낼 줄 아는 타고난 화가인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이 서 있는 모티프는 이 유파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전형적인 것 가운데서도 개인적인 것을 구별해내려고 한다. 사제가 두 손을 잡은 모습은 얼마나 섬세하게 다른 것인가.
주변 인물들도 산만하지 않고 집중시키는 효과를 내도록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서 막대를 꺾는 사람이 좌우 대칭의 구조를 깨뜨린 것은 거의 대담하다고 할 만하다. 페루지 노도 이 인물을 그렸지만 훨씬 더 뒤쪽으로 밀려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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