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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부에(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 우피치 미술관 소장
치마부에의 본명은 첸니 디 페포이다. 13세기 후반 토스카나 지방에서 활약한 당대의 저명한 화가. 그의 작품으로 믿어지는 피사 성당의 모자이크 그림 [옥좌의 크리스트는 아쉽게도 많이 파손되었다. 앗시시의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두 개의 성모자상도 그의 작품으로 인정되며, 동방의 영향을 받은 비잔틴식을 지니면서도 힘찬 느낌과 위대성이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극히 적은 것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로마, 피렌체, 1301년에는 피사의 성당에서 일하고 세상을 떠난 것 같다. 이 그림은 산타 토리 니타 성당의 제단화로 그려진 것이다. 치마부에의 작품이라는 설은 일치되어 있으나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아마도 앗시시의 벽화를 그린 후 1270년 말에서 1280년 초에 그려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성모자가 비교적 큰 비율로 중앙에 자리 잡고, 주위에 천사들이 넷씩 좌우 상충으로 성모자를 받들고 있다. 옥좌 밑에서 두루마리를 펴 들고 있는 노인은 예레미야, 아브라함, 다비드, 이사야이다. 이처럼 의식적(儀式的)이며, 금색을 수놓은 호화스러운 의상에 의한 화면 구성은 비잔틴 양식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초는 피렌체의 지옷토 시에나의 두치오에서 시작된다. 지옷토의 자연주의(自然主義)에 대해서 두치오는 비잔틴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그 현실감, 마음의 섬세한 느낌과 시원스러운 구도와 풍부한 색채는 지옷토와는 다른 세계를 열었다. 두치오는 지금까지의 화가에서 볼 수 없었던 생명의 움직임을 나타냈고, 장엄한 구도로써 극적인 표현을 하였다. 그의 걸작으로 알려진 유명한 그림은 시에나 성당의 미술관에 있는 「마에스타이다. 이 그림은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 것으로, 그의 역량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다. 세 면을 접고 닫을 수 있는 것으로, 중앙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있고, 왼쪽에 성 니콜라우스, 오른쪽에 성 그레고리오스가 그려져 있다. 중앙의 십자가 밑 부분 중 오른쪽은 크리스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몸짓이 나 표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화면에 율동감을 나타내는 색의 배치가 놀랍다. 십자가 밑의 붉은 피는 보는 사람의 눈을 끌게 하는데, 이 붉은 피가 슬픈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붉은색이 배치되어 있는 여러 부분의 기점이 되고 있다.
이 작품은 분명 그의 만년에 아비뇽에서 그려진 것이다. 원래는 전개 도식 소제단(展開圖式小祭壇)이었으며, 그 일부가 안트베르펜(안트 워 어프)과 파리에 남아 있다. 이 크리스트의 매장도(埋葬圖)는 크리스트의 시체(屍體)를 둘러싸고, 도취적(陶醉的)인 비통(悲痛)과 절망적(絶望的) 귀의(歸依)에 있는 일군(一群)의 사람들을 나타내고 있다. 성모(聖母), 3인의 마리아, 사도(使徒) 요한, 니코데모, 니코데모에게 향유(香油) 의병을 건네주는 아리마 테이아의 요셉 등에게는 후광(後光)으로써 특색 지어 놓았다. 성모는 크리스트의 머리에 입 맞추며 그의 몸을 안고 있다. 슬픔을 견디지 못한 크리스트의 애제자(愛弟子) 요한은 그의 얼굴을 감추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절망(怨望) 하여 양손을 들고 있다. 소품(小品)인데도 불구하고 인물의 표현력, 그 얼굴과 몸짓 등은 압도적인 내면성을 지니고 있다.
치마부에의 제자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같은 시대의 인물인 단테는 그의 명작인 신곡(神曲) 가운데, 지옷토가 치마부에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사람으로 그의 공적을 치하하고 있다. 문예 부흥기가 시작되기 전에, 유럽의 회화에 새로운 혁신을 일으킨 사람으로, 그 의미 술 사적 공로는 그에 비할 사람이 없다. 13 세기의 서양 미술은 조각이 그 주류를 이루었으나, 지옷토가 나타나 비로소 회화가 표현 양식의 하나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는
주로 벽화(프레스코)를 그렸는데, 그 회화적 표현으로 희곡적인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려진 인물의 동작이나 그려진 인물의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의 회화에서 보는 것처럼 자연의 관찰이 폭넓지는 않으며, 머리는 유형적(類型的)이고 옷의 표현은 도식적(圖式的)이다. 그러나 인물은 자주성이 있으며, 정신적 인감동이 보는 사람에게 와닿는 감동적인 데가 있다. 정해진 평면에 많은 인물들을 탁월하게 배열해서 공간의 구성을 하였고, 많은 벽화들이 그 건물과 잘 조화되도록 하였다. 그의 그림은 모두 성경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재래의 비잔틴식의 장식적인 도식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감각으로 생명을 표현하였다. 이 그림은 프란체스코 성인이 나귀를 타고 병자를 찾아가는데 마부가 목이 말라서 한돌을 헤치니 물이 솟아 흘렀다.'라고 하는 전설적 이야기로 문예 부흥기의 화가 전기를 쓴 바사리는 그의 저서에서, “마부는 마치 산 사람이 물을 마시는 듯하다.”라고 찬양하였다.
지옷토는 로마에서 북쪽의 시골인 작은 마을 앗시시의 성당에 제자와 더불어 프란체스코의 생애에 대한 많은 벽화를 그렸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베 바니아로 가는 도중 새 떼에게 설교를 하였더니, 새들은 날개를 펴고 성인을 따랐다. 이 그림은 프란체스코 성인이 얼마나 소박하고, 넘치는 애정으로 자연을 사랑하였는가를 보여 준다. 또한 이 그림은 지금까지의 지옷토의 그림에 비하여 규범적인 규칙에 의해서 그려지고 있다. 날아와 앉는 새나 서 있는 나무 등 자연주의적인 묘사와, 밑에 서 있는 성인을 부드럽고도 엄격한 고고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새에게 설교를 하는, 이 세상에 대한 성인의 절망도 느낄 수 있다. 새들은 석고로 그려졌기 때문에 파손이 심하다. 왼쪽의 수사(修士)는 조수의 손에 의해 그려 듯 서툴다.
베니스의 바로 옆에 있는 파도바의 작은 도시에 있는 스크로베니 성당에 1304년에서 1306년경에 벽화를 그렸다. 가장 높은 곳에는 요아킴과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 6면 중간과 밑에는 크리스트에 관한 22 면, 정면에 보이는 성당 내부 벽과 입구의 력에는최후의 심판 등 38면의 많은 연작들이 있다. 유다는 예수를 빨기로 결심하고 횃불을 든 병정들을 데리고 밤중에 예수를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입 맞추는 자가 예수이니 그를 잡아라.”하고 예수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배반하는 유다와 배반당하는 예수의 극적인 장면을 서로 맞바라보는 대결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지옷토 이전에도 인간으로서의 고뇌에 찬 예수의 이 장면은 흔히 주제가 되었으나,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와 유다가 맞바라보고, 두 시선을 교차하면서 긴장같이 가득 찬 풍부한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은 없다.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유다의 옷은 화면 중심에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예수 뒤에 서서 베트로가 칼을 들고 악당의 귀를 자르고 있는 장면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중앙의 유다와 예수를 손상하지 않으며, 우거진 숲처럼 횃불과 무기들이 하늘을 찌르는데 교묘히 화면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군중은 두 편으로 나뉘어 중앙의 예수를 주시함으로써 질서 있는 화면의 리듬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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