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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에 맞서는 인물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나타난 베로키오(Vermochio. 1435∼1488)이다. 개인적인 위대함을 따지자면 도나텔로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이상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한 인물이었다.
15세기 중반 이후로 섬세함과 가냘픈 팔다리, 우아함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체는 우락부락한 특성을 잃어버리고 날씬해졌으며, 관절도 가늘어졌다. 위대하고 단순하던 선은 좀 더 작고 섬세한 움직임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정교한 조형물에서 기쁨을 얻었다. 극히 섬세하게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것까지 일일이 느꼈다. 사람들은 동작을 원했으며, 고요함과 닫힌 것이 아니라 긴장을 원했다. 손가락은 의도적인 우아함으로 펼쳐졌고, 신체를 틀거나 머리를 굽히는 형태들이 많았으며, 미소도 많고, 감정에 가득 차서 위를 올려다보는 모습도 묘사되었다. 억지로 꾸며낸 특성이 자리를 차지해서 자연스러운 감정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다.
도나텔로의 청동 <다윗>상과 베로키오의 청동 <다윗>상을 나란히 놓고 보면 그런 대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힘 좋던 젊은이가 섬세한 지체를 가진 소년으로 변했다.
게다가 아주 야위어서 정확한 형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허리를 짚은 팔의 뾰쪽하게 솟은 팔꿈치는 핵심 실루엣에 들어간다. 팔과 다리에는 긴장이 드러나 있다. 쭉 뻗은 다리, 수직으로 세운 무릎, 칼을 들고 반듯하게 뻗은 팔. 이런 모습은 도나텔로 조각상의 평온함과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전체 주제가 움직임의 인상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은 얼굴 표현에서도 이런 동적인 인상을 원했으며, 마침내 소년 승리자의 모습 위로 미소가 흐르게 되었다. 장식성을 지향하는 취향은 다윗이 입은 갑옷의 세밀함에서 만족을 얻는다. 이 갑옷은 섬세한 신체 선을 세밀하게 따라가다가 그 선을 중단시킨다. 누드를 다룬 방식을 관찰하자면, 베로키오의 풍부한 형태에 비해 간결하게 묘사한 선배 도나텔로의 작품은 거의 텅 빈 듯하다.
두 개의 기마상을 비교해보면 역시 같은 특성을 볼 수 있다. 파도바에 있는 도나텔로의 <가타멜라타>상과 베네치아에 있는
베로키오의 <콜레오니>상이다. 베로키오는 기수의 앉은 자세와 말의 동작에서 몸을 뒤트는 움직임을 모두 동원하였다. 그의 콜레오니는 두 다리를 쭉 뻗고 말을 타고 있으며 말은 끌려간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앞으로 돌진한다. 지휘봉을 잡은 모습, 머리를 돌린 모습 등이 역시 같은 취향을 보여준다. 그에 비하면 도나텔로는 무한히 단순하고 별다른 요구가 없다. 그는 여기서도 거대한 표면을 전혀 중단시키지 않고 장식 없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에 반해 베로키오는 평면을 작게 분할해서 세부적인 데까지 자세히 제시한다. 마구(馬)는 전체의 표면을 작게 만든다. 갑옷과 말갈기를 다룬 방식은 15세기 후반 장식미술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서 예술가는 근육을 지나치게 세밀히 묘사했기에 '베로키오가 피부가 벗겨진 말을 만들었다'는 평이 나오게 되었다.
베로키오는 주로 청동 조각을 통해서 명성을 얻었다. 당시 청동의 장점들이 충분히 발전되어 있었다. 큰 덩어리 대신 형태들을 분리시켜서 섬세한 실루엣을 만들 수 있었다. 회화적인 측면에서도 청동의 아름다움이 인식되고 이용되었다. 피렌
체의 오르산미켈레 성당에 있는 <성 토마의 의심>이라는 그룹 상의 풍성한 옷 주름은 선이 만들어내는 인상 말고도 번쩍이는 빛과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어른거리는 반사 효과까지도 계산한 것이다.
이런 새로운 취향으로 인해 진짜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대리석으로 작업하는 조각가들이었다. 사람들의 눈은 이제 아주 섬세한 뉘앙스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전에 없는 섬세함으로 돌을 다루었다. 데시데리오(Desiderio, 1430∼1464)는 값진 과일 화관을 만들어서 웃고 있는 젊은 피렌체 여자들의 흉상에 환하게 씌어주었다. 안토니오 로셀리노(Antonio Rossellino, 1427~1479)와 그보다 약간 더 폭이 넓은 베네데토 다 마야노(Benedetto da Majano, 1442∼1497)는 표현의 풍부함을 놓고 회화에서 경쟁을 벌였다. 이제 조각가의 끝은 아이들의 부드러운 살결과 머리장식의 섬세한 베일까지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정확하게 관찰해보면 어디선가 불어온 미풍이 천 끝을 들어 올려 천 주름이 유쾌하게 뭉친 것을
볼 수 있다. 건축과 풍경을 표현하면서 부조의 바탕이 더욱 깊어졌다. 평면을 다룰 경우에는 언제나 생동하는 떨림과 흔들림의 인상을 만들어내려고 하였다.
과거 조각의 전형적인 과제들이 가능한 한 움직임으로 바뀌었다. 루카델라 로비아(Luca della Robbia, 1400~1482)가 소박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무릎 꿇은 <촛대를 든 천사>만으로는 이제 충분치 못했다. 촛대를 든 천사도 서둘러 다가오는 물결에 휩쓸려 들었다. 그래서 시에나에 있는, 베네데토의 <촛대를 든 천사>와 같은 것이 나왔다. 미소 지으며 명랑하게 머리를 치켜든 천사는 섬세한 무릎 주변으로 풍성한 주름을 만들면서 가볍게 얼른 무릎 굽혀 절을 한다. 이렇게 달리는 모습을 더욱 높이 승화시킨 것이 날아가는 천사의 모습이다. 얇은 옷자락에 강력한 선들의 물결을 일으키면서 공기를 가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부조로 만들어 벽에 붙여놓으면 정말 공중에 뜬 듯한 인상을 불러일으킨다(피렌체의 산 미니아토에 있는 안토니오 로셀리노의 포르투갈 추기경의 영묘). 섬세한 양식을 보여주었던 이들 조각가 그룹과 함께 15세기 후반에는 화가들도 같은 길을 간다. 물론 조각가들보다 화가들이 시대정신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들이 바로 15세기 피렌체의 인상을 결정하고 있다. 초기 르네상스 하면 우리는 우선 보티첼리와 필리피노를 생각하고, 이어서 기를란다요의 화려한 그림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마사초를 직접 뒤이은 흐름은 수도사 필리포 리피 (Fra Filippo Lippi,1406~1469)를 통해서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필리포 리피는 브란카치 예배당의 프레스코와 세기 중반 무렵 프라토 대성당의 성가대석 그림에 매우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겼다. 위대함도 부족하지 않았으며, 화가로서도 특별한 의미에서 아주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패널 그림들은 어두운 숲의 내부 같은 것을 표현했다. 그것은 뒷날 코레지오(Correggio, 1494~1534)에게서 다시 나타난다. 그는 프레스코의 착색 효과라는 점에서 15세기 피렌체 화가들보다 훨씬 훌륭하였다. 그가 스폴레토 대성당의 반원형 우묵 벽(apsis)에 그려놓은 <성모의 대관식>의 화려하고 거대한 모습을 본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그것과 비슷한 것이 없다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들은 구성이 나쁘다. 공간이 협소하고 불확실하며, 마사초가 이미 이룩한 이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관심을 다시 분산시킨다.
많은 것을 순수하게 발전시키는 일은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그 일을 해냈다. 프라토에서 기를란다요의 작품을 보고 이어서 산타마리아 노벨라 교회에 있는 그의 프레스코를 보면 그가 얼마나 분명하고도 평온하게 작업했는지 놀라게 된다. 공간은 저절로 설명되고 전체 모습은 아주 분명한 현상처럼 꿰뚫어볼 수 있다. 그리고 혈관 속에 기를란다요보다 훨씬 더 불안한 피를 지닌 필리피노나 보티첼리에 게서도 그와 비슷한 장점들이 분명히 드러난다.
보티첼리는 필리포 리피의 제자였지만 그의 가장 초기 작품들에서만 그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기질이 아주 달랐다. 수도사 필리포가 아량 있는 웃음과 이 세상의 사물에 대해 균형 잡힌 선량한 즐거움을 느꼈다면, 보티첼리는 서두르고 정열적이며 내적으로 언제나 흥분해 있는 인간이었다. 회화적인 표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과격한 선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자기가 그린 얼굴에 언제나 성격과 표현을 풍부하게 부여하는 예술가였다.
좁은 얼굴을 가진 그의 성모를 생각해보라. 입술은 꼭 다물었고 눈은 어둡고도 우울하다. 그것은 필리포의 만족스런 찡끗거림과는 완전히 다른 눈길이다. 그의 성인들은 형편이 좋고 건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는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성인에게 내면을 갉아먹는 불길을 주었고, 젊은 세례 요한에게는 열광과 금욕의 표지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성스러운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나이가 들면서 외적 현상의 모든 매력을 포기하였고, 그래서 이런 진지함이 더욱 강해졌다. 그의 아름다움은 괴로움으로 여윈 모습이다. 그가 미소를 지을 경우에도 그저 잠깐 지나가는 불꽃처럼 보인다. <봄(LaPrimavera)>에서 춤을 추는 세 우미(優美)의 여신들은 기쁨을 표현하는모습이 얼마나 인색하며, 그들의 육체는 또 어떠한가? 그들은 어떤 육체를 가지고 있는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나이에 아릿하게 야윈 모습이 시대의 이상형이었다. 움직임에는 풍만한 곡선이 아니라 긴장과 앙상함이 드러나고, 둥글고 풍만한 모습이 아니라 섬세함과 날카로움이 온갖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바닥의 나무와 풀의 묘사, 그리고 얇은 옷감과 잘 다듬어진 장식품에 나타난 장식적 요소는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개별적 요소를 오래 살펴보는 것은 보티첼리의 방식이 아니다. 벌거벗은 모습에서도 그는 부지런히 세부를 묘사하는 것을 싫어하고 더 큰 선으로 단순한 묘사를 하려고 한다. 그가 탁월한 도안가였다는 사실을 미켈란젤로의 교육을 받았던 바사리조차 인정하였다. 그의 선은 언제나 자극적이고 불 같은 성정을 드러낸다. 그것은 서두르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서두르는 동작을 묘사할 경우 그는 비할 바 없이 효과적이다. 심지어 대규모의 물결을 묘사하는 일에도 성공하고 있다. 그가 하나의 중심점으로 그림을 통일적으로 정리하면 대단히 중요한 특별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그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필리피노 리피 (Filippino Lippi, 1459~1504)는 보티첼리와 같은 호흡으로 언급되는 화가다. 아주 다른 이 두 개성을 동일한 분위기가 결합시켜서 비슷한 현상으로 만든다. 필리피노는 아버지 (필리포 리피)를 닮아서 보티첼리가 갖지 못한 색채의 재능을 가졌다. 표면과 사물의 표피가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피부색을 다른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다루었고, 머리카락에 부드러움과 광채를 주었다. 보티첼리에게서 선의 유희에 지나지 않던 것이 그에게는 회화의 문제가 되었다. 그는 색채를 매우 까다롭게 선별하였다. 특히 푸른 색조와 보라 색조에서 그랬다. 그의 선은 온화한 물결 모양이다. 그는 감정적으로 여성적인 요소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필리피노의 초기 그림들은 감정과 실행의 매혹적인 부드러움을 지닌다. 그러나 그는 때로 지나치게 부드럽다. 1486년 작인 <성모와 네 성인>(우피치 미술관)에서 요한은 거친 사막의 설교자가 아니라 감정적인 몽상가로 표현되어 있다. 같은 그림에 나오는 도미니크 수도사는 책을 손으로 꽉 움켜잡지 않고, 엄지손가락의 지문 위에 한 조각 천을 깔고 그 위에 겨우 균형을 맞춘 책을 올려놓고 있다. 움직이는 섬세한 손가락들은 극히 예민한 더듬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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