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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선 공간 문제를 완전히 정복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그림은 처음으로 통일된 시점(視點)을 정하고 구성되는 무대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인간, 나무, 집들이 각기 기하학적으로 거리를 추산할 수 있는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조토의 경우에는 아직 많은 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다. 그는 물체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을 충분히 계산하지 않고 머리 위에 머리를 그렸다. 뒤쪽의 건물도 불확실하게 흔들리는 배경 속으로 밀쳐져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인물들과 사실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 마사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림의 공간은 풍경의 마지막 선에 이르기까지 아주 분명하다.


그는 사람들의 머리 높이를 시점으로 잡았으며, 같은 위치의 무대 위에 선 인물들은 모두 머리 높이가 같았다. 세 개의 옆얼굴이 나란히 겹쳐 나온 다음, 네 번째 정면 얼굴이 전체를 마무리하면 얼마나 확실한 효과를 내는가!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공간의 깊이로 끌려들어 가고, 모든 것은 깊이가 분명해진다.


이 새로운 예술의 모든 광채를 보려면 산타마리아 노벨라(피렌체) 성당에 가서 그가 그린 <성삼위일체> 프레스코를 보라. 건축 구조물의 도움을 받고, 겹침 기법을 십분 활용해서 점점 더 깊어지는 네 개의 평면이 극히 강력한 공간 효과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비해 조토는 완전히 평면적이다. 산타 크로체에 있는 그의 프레스코들은 벽걸이 양탄자처럼 보인다.
일정하게 푸른 하늘 색깔이 위아래로 그려진 여러 그림들을 하나로 결합시켜서 하나의 평면적인 표면을 만들어낸다. 현실의 한 토막을 붙잡는다는 생각은 아직 먼 듯싶다. 여러 개로 구획된 평면은 오로지 장식으로만 치장될 수 있다는 듯이 가능한 한 균등하게 맨 꼭대기까지 채워져 있다.


모자이크 무늬가 그림을 빙 두르고, 심지어 그림 안에서도 되풀이될 경우에는 테두리 장식과 테두리 내부 사이를 구분할 수가 없으며, 필연적으로 평면적인 벽장식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마사초는 그림을 색칠된 기둥 속에 넣어서 기둥 뒤로 그림이 계속된다는 환각을 일깨웠다.


조토는 옅은 그림자만 그리고 짙은 그림자들은 대개 무시하였다. 그가 이런 그림자를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리로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을 불필요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사물을 뚜렷하게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림을 방해하는 우연성의 요소라고 느꼈다. 마사초의 경우 빛과 그림자(명암)는 1차적인 중요성을 가진 소들이었다. 그에게는 '존재'를 부여하고 물체를 완전한 자연 효과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였다. 물체나 집단에 대한 자신의 느낌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인물을 그려내는 자신의 힘이나 군중이 몰려든 것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령 맨머리를 그려놓을 경우 묵직한 형태의 윤곽선만 가지고 처리한 그의 방식은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는 양감이 무한한 힘을 가졌다. 그리고 다른 모든 형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예전 그림들의 가벼운 색채가 그림자 같은 형태로만 나타났다면, 이제는 '입체적인 채색 효과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림의 전체적인 모습이 고정되었다. 그리고 바사리의 관찰, 곧 마사초와 더불어 그림 속 인물들이 처음으로 굳건하게 두 발로 서게 되었다는 말의 의미가 명백해진다.


여기에 또 다른 요소가 덧붙여졌다. 개성적인 것, 개인적이고 특수한 것에 대한 감각이 날카로워졌다. 조토도 자신의 인물들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 다만 그의 경우는 일반적인 구분일 뿐이었다. 마사초의 경우에는 등장인물 개인의 특성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15세기를 가리켜 '리얼리즘의 세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물론 너무나 많은 사람을 거치면서 순수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 말에는 프롤레타리아적인 요소, 분노한 항의의 모습이 달라붙어 있다. 잔혹한 추함이 모습을 드러내고서 '나도 세상에 있으니 내게도 권리를 달라'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15세기 리얼리즘은 본질적으로 즐거운 것이다. 새로운 요소들을 불러들여서 상승된 가치평가 방식이다. 그리고 이제 관심은 특성을 드러내는 머리에만 그치지 않고 개인의 태도 전부와 움직임도 묘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모든 특이한 소재의 의지와 변덕에 주목하고, 독특한 선을 즐거워한다. 그 이전의 아름다움의 공식은 자연을 왜곡한 것처럼 보였다. 부풀린 자세, 파동치는 옷의 주름 등이 아름답고 공허한 관용구처럼 느껴져서 사람들을 물리게 했다. 이제 현실성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일어났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일에 대한 순수한 증거가 있다면, 천상의 존재들도 지상의 옷을 입고 개인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으며, 어떤 이상(理想)의 흔적을 보이지 않고 현실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마사초 다음으로 새로운 정신을 가장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한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였다. 마사초는 요절했다. 그래서 아주 잠깐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는 15세기 전반 전체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긴 줄을 이루고, 그는 15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시대의 특수한 과제를 다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에너지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고삐 풀린 리얼리즘의 일방성에 빠져 죽지 않았다.
그는 특징적인 형식을 파고들어 추함의 모든 깊이까지 추적한 인체 조각가였다. 그러면서도 다시 고요하고 위대하며 마술적인 아름다움을 완전히 순수하고 평온하게 만들어냈다. 특이한 개성의 내용을 바닥까지 남김없이 표현한 그의 인물상들이 있다. 그와 나란히 전성기 르네상스의 미에 대한 감정을 극히 분명하게 보여주는 <다윗>과 같은 청동 조각상들도있다. 이 모든 작품에서 보면 그는 극적 효과의 힘과 탁월한 생동성을 지난 이야기꾼이다. 시에나에 있는 부조 <솔로몬은 15 세기의 가장 훌륭한 이야기라고 칭할 만한 것이다. 뒷날 그는 파도바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의 기적들>에서 감정적으로 흥분한 대중을 그림에 도입함으로써 16세기 방식의 문제들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대중은 동시대의 그림들에 나타나는 고요한 입회인들의 모습과 나란히 놓고 보면 정말이지 특이한 대립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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