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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토록 오랫동안 모델을 바라보면서 세잔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앞에서 인용한 가스케에게 낸 편지의 한 절로도 명백하듯이、그는 우선 모델을「보고」 있었다.그는 자기의 눈을 통하여 눈앞의 대상의 모든 것을「읽으려고」하고 있었다. 그러 나 그가 〈온실 안의 세잔느 부인>의 모습에서 보고 있었던 것은 모네가 본 것 같은 모든 것이 매혹적인 빛의 물결에 뒤덮이는 세계도 아니고、르노와르가 보고 있었던 잘 익은 과 일같이 따스하고 싱싱한 살결의 매력도 아니었다.그가 추구한 것은 눈앞의 대상을 형성하 는 본질적인 구조였다.모든 것이 결같은 빛의 물결로 환원되어 버리는 인상파의 세계 속 에서, 세잔느는 대상을 주위의 세계로부터 구별하는 기본적인 형태를 추구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확고한 형태를 추구한다는 것은 이미 단순한 시신경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후에 브라크가「눈은 형태를 이지러뜨리고 정신은 형태를 만든다」라는 간결한 말로 표현한 것과 같이 자연 속에 하나의 질서를 세우려고 하는 정신의 활동이다. 세잔느가 친 구인 모델에 대하여 

 


「그는 눈이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나 훌륭한 눈일까?」 
하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이 한 마디에는 모네의 정밀한 감각에 대한 감탄과 동시에 은근한 비판까지도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형태를 파악한다는 것은 단순한 눈으로 가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기하학의 세계와 통되는 지적인 정신의 작용이다. 세잔느가 젊 은 친구 베르나르를 보고「자연을 원추와 원통과 구체로 포착하는 것」을 가르친 것도 사실 은 그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온실 안의 세잔느 부인〉을 일례로 모네의〈파라솔을 쓴 여인>과 비교해 보면 명 백하다。여기서는 얼굴의 눈코는 말할 것도 없고 신체의 윤곽선조차 분명하지 않은 모네의 소녀와는 달리, 오르탕스의 모습은 뚜렷하게 자기의 형태를 주장하고 있다.그녀의 달걀형 얼굴은 머리’이마, 턱의 선 등 어느 것이나 콤파스로 그린 듯한 명확한 반원형으로서、그 전체의 질서를 중단시키는 세부、예를 들면 두 귀 같은 것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암시되고 있음에 불과하다。얼굴의 기본적 리듬인 그 반원형의 선에 호응하여 두 어깨가 역 시 튼튼한 아치를 형성하고 몸뚱이는 허리에서 밑으로 퍼지는「원추」위에 튼튼하게 올 려놓았다。목과 두 팔은 그야말로「원통」이며 여기서도 손가락끝 같은 세부는 무시되어 있 다。이와같이 하여 포착된 대상은 역시 마찬가지로 엄격한 기하학적 질서의 구도 안에 배 치된다. 고개를 약간 기울인 세잔느 부인의 두 눈과 입술의 선은 화면을 크게 가로지르는 배후의 벽의 사선(斜線)과 평행이며, 그것들과 들어맞게 직각으로 교차되도록 배경의 나무 와 모델의 바른손을 잇는 또 하나의 기본선이 설정되어 있다. 젊은 화가들에게 항상 자연 을 바라보는 것

 


「자연에 입각하여 그린다는 것은 결코 감각을 실현하는 일이다。」 
라고 말했는데、이 경우에 그가 말하는「감각」이라는 것은 시각을 통하여 행해지는 정신의 인식작용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세잔느의 화면은 콤파스와 자로 그린 기하학적 도형과 다름없는 것일까. 우리가 〈온실 안의 세잔느 부인>에서 받는 인상은 물론 그것과는 정반대다.거기에는 따뜻 한 햇빛 속에서 숨쉬는 충실한 형태가 있고, 모델을 둘러싼 풍부한 공간이 있으며, 세잔느 의 초상화치고는 거의 예외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가냘픈 서정의 향기마저 느껴진다. 그것이야말로 대상을 인식하는 정신작용까지도 포함해서 세잔느가 모델로부터 느낀「감각」 이었다。

 

 

그것을 그는 부분적으로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생각되는 이 화면에서 멋지게 실현 시키고 있다。기하학적인 구성 속에 풍부한 현실의 감각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는 이 사실 이야말로 세잔느의 천재에게만 허용된 기적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기적을 설명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제작과정을 분석해 본다면, 마디로 말해서 색채와 예상의 통일에 의한 새로운 회화공간의 확립이었다고 규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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