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르네상스 미술

회화예술 자체에 내재

love으뜸 2023. 1. 21. 11:25
반응형

원래 평면성과 입체성과의 모순은 처음부터 회화예술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었다

르네상 스 이래의 서구회화는 원근법과 명암법에 의하여 三차원 세계의 환영을 화면 위에 계속 추구해 왔는데, 그때 평면성의 강조는 당연히 부정되어 왔다. 인상파의 등장은 세계를 모두 「빛의 양상 밑」으로 바라봄으로써 깊이를 잃게 하고 차츰 화면을 평면으로 근접시켜 나갔 다. 모네가 만년의 수련(睡蓮) 화면에서 연못 기슭과 하늘을 없애고 수면만을 그리게 된 것도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인상파의 세례를 받은 세잔느는 당시의 전통적 회화가 고치려 하고 있었듯이 원근법과 명암법에 의한 입체표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그것은 색채의 풍요함을 희생시키고 그 자 신의 감각을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그는 화면의 二차원성에 완전히 복종해버릴 수도 없었다. 만일 그렇게 하면 그의「원추와 원통과 구체는 삼각형과 장방형과 원으로 환원되고 말 것이다.그것은 세잔느의 영향을 받은 큐비즘 그루우프의 어떤 대상의 두께도、화면의 사람들이 실제로 걸어간 길이었다. 세잔느 자신은 공간의 깊이도 평면성도、 모두 동시에 실현하려고 했다. 
그 때문에 세잔느가 사용한 방법은 색채에 의한 조형이다.그의 제작법은 전통적인 회화 가 그랬던 것처럼、우선 예상으로 모양을 갖추고 거기에 색을 칠해 가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여 인상파의 색채분할처럼 형태를 무시하고 색의 터치를 늘어세우는 방법도 아니었다

 

색채 자체로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는 그의 독특한 방법이었다. 

 


〈온실 안의 세잔느 부인〉의 얼굴에선 전통적인 음영에 의한 살붙이기는 볼 수 없다. 연 굴의 凹凸은 한색(寒色)과 난색의 대비로 표현된다

 

곧 그늘에 해당하는 부분은 파르스름 한 색으로 칠하고 밝은 부분에는 빨강이나 주황이 사용된다 우리의 감각으로는 한색은 쑥 들어가 보이고 난색은 불거져 보이므로 그것으로 살붙이기가 되는 셈이다. 
〈온실 안의 세잔느 부인〉에서는 그 색채에 의한 살붙이기는 별로 강조되어 있지 않기 때 문에 그녀의 얼굴은 평면적이다。그것에 비하여 보스턴미술관에 있는〈빨간 팔걸이의자의 세잔느 부인〉에서는 그 살붙이기가 강조되어 있으므로 얼굴의 입체감은 한층 뚜렷한 대신 오르탕스는 마치 푸른 색으로 얼룩덜룩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경우를 보아도 색채의 흐름과 농담(濃淡)、배치는 눈꼽만한 혼란으로도 얼굴 전체의 구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것같이 미묘하다。세잔느가 모델을 앞에 두고 그토록 오래 고심하던 것은 그 정확한 표현을 붙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잔느 부인의 자주빛 나는 의상도 대범한 터치로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이 지만, 자세히 보면 부분은 불그레한 자주빛이고 凹부분은 푸른 터치가 가해져 있어 역시 색채에 의하여 조형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완성된 성과가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미묘한 계산을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세잔느가 고생을 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의상의 일부와 손이 아직 미완성이지만 세잔느의 제작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터치를 화면에 가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전체의 색의 밸런스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화면 전체에 영향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세잔느는 부분적으로 완성시켜가는 것이 아니고 항상 전체의 효과를 생각하면서 전체를 동시에 진행시켜 나간다。

 

따라서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미완성 부분이 화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화면의 엄격한 질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색채와 데상은 결코 구 별되는 것은 아니다…색을 칠해감에 따라서 데상은 튼튼한 것이 되고 데상이 충실해짐에 따라 색채도 풍요하게 된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바로 이 색채에 의한 조형의 본질을 나 타내는 말이다. 


이렇게 하여 세잔느 부인의 신체는 확실한 입체감을 지니게 된다. 같은 색채의 배합과 세잔느 부인 등뒤의 벽, 그 맞은편의 나무 따위 몇몇 면(面)의 중첩으로 공간의 깊이도 보증 된다。우리는 거기에 확실히 현실의 공간과 살아 있는 인간의 존재를 느낄 수가 있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 공간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색채는 화면의 어느 부분에 있어서도 똑같이 풍요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는 화면의 평면성을 우리들 관객에게 호소 한다. 

 

세잔느 부인 오른쪽에 있는 붉은 꽃도、등뒤의 나무도 세잔느 부인보다는 뒤쪽에 있어야 하고 또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꽃의 선명한 빨강과 나무의 녹색은 세잔느 부인의 의상의 자주빛과 마찬가지로 강렬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어느것 이나 다 그것이 놓여 있는 화면을 우리에게 강력히 의식시킨다。

 

확실히 깊이있는 공간 속 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 동시에 같은 평면이라는 것을 느끼고 난 우리는 한동안 거의 아찔 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보스턴의 〈붉은 팔걸이의자의 세잔느 부인〉의 경우에서도 의상의 파랑 과 의자의 빨강、등뒤 벽의 노랑이 서로 중첩됨으로써 공간 속의 정당한 위치를 유지하면 서 똑같은 감각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거기서는 스커어트의 세로무늬가 평면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는 만큼、이「평평한 공간」또는「깊이있는 평면]이라는 이색적인 체험은 한 층 더 강렬하다. 

 


색채에다 이토록 많은 역할을 떠맡긴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무모한 이야기다. 거기서는 무엇이 눈곱만큼만 틀려도 당장에 전체의 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 세잔느가 그 려내는 세계는 풍경이나 정물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물상까지도 전혀 평범한 일상의 주제이지만,

 

그 속에 무시무시한 색채와 형태의 드라마가 숨어 있다.

 

그가 회화의 방향을 크게 바 꿔놓은 것도 실은 그 드라마없는 드라마 때문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