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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와의 기나긴 메디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B.C. 5세기 무렵의 전 그리스를 통합하는 델로스 동맹의 기운은, 미술면에 있어서도 그리스 각지의 작가들을 아테네에 모이게 했으며, 현자(賢者) 페리클레스 전제(專制)의 융성을 초래하였다. 마침 그 무렵에 앗티카와 펠로폰네소스의 조각 기술은 완벽에 가까왔으며, 역사가들은 그 시대를 아르 카이크 시대와 클래식 시대의 경계라고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아테네이며, 그때까지의 각지의 유파의 형식도 전 그리스적 경향에 종합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1세기 전 무렵 페이스 토라 토스 전제 시대에도 아테네에서는 예술 융흥을 볼 수 있었으니, 실로 파르테논을 중심으로 하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그리스 예술의 종합 정점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파르테논 신전 건립을 위하여 피디아스 아래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미술가의 대집단이 이루어졌다. 이「바르베리이니의 탄원하는 여인」은 파르테논 신전 건립을 위한 집단의 한 사람인 크레타 사람 크레시라스의 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크레시라스는 페리클레스의 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알려져 있으며 이 「바르베리이니」가 그의 원작이 아니라 할지라도 당시의 아테네 조각의 관념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피디아스의 원작이 남아 있지 않고 파르테논이 그의 전모를 시사하는 최고의 본보기인 오늘날, 그와 동시대의 펠로폰네소스 아르고 스파, 슈기유 온 파의 대표적 청동 작가 폴리 클레이토스는 대리석과 청동 조각 작품의 2대 선구자로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피온 비 이노의 아폴론」과 더불어 「바르베리이니의 탄원하는 여인은 흥미 깊게 보인다. 이름 높은 헤게 소의 묘비로, 보존 상태도 극히 양호하다. 아름다운 모양의 의자(쿠리스 모스)에 걸터앉은 헤게 손, 앞에 서 있는 시녀가 내미는 작은 갑(小匣)에서 무엇인가를 꺼내고 있다. 반지인지, 목걸이인지 알 수는 없으나 물감으로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시녀는 주인과는 대조적으로 허술한 옷차림으로 머리를 모두 천으로 싸고 있으며, 발에는 신을 신고 있다. 의자에 걸터앉은 여성과 그 앞에 서 있는 시녀라는 형식은 물론 이것이 최초는 아니다. 이 헤게 소의 시녀에게는 뒤의 묘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우울한 슬픔의 그림자는 없다. 이것은 헤겠소 생전의 모습이며, 유족의 마음에 남겨진 고인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원래부터 그것은 초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닮게 표현하려면 얼마든지 닮게 하였으리라.
그러나 이 무렵, 그리이스인은 그와 같은 개성적인 초상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여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빨리 세상을 떠나 묻혀 있다'는 것을 나타내면 그것으로 만족하였던 것이다. 헤게 소의 묘비는 아테네 서북의 시문(市門) 디필론, 에리 다노스의 흐름에 따른 케라 메이 코스 묘지 중앙을 뚫는 참도(參道)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헤게 소의 남편이라고 생각되는 코로 이 보스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루토루포로스의 묘비 등, 세 개의 묘비가 나란 줄 서 있는 것으로 봐서 한집안의 묘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대좌(臺座) 위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그 대좌의 봉납명(奉納銘)에 의하여 크세니아 데스의 딸 크세노 크라티아가 하신(洞神) 케피소스에게 봉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왼쪽 끝(左端)에 있는 것은 아폴론에 틀림이 없다. 그 발 언저리에는 옴파로스(델포이에 있던 아폴론의 성석(聖石)으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였다.)와 성수(聖獸)인 독수리(鷲), 그 이웃에 거의 정면을 향하고 있는 여성은 아르테미스인가? (레토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젊은 편이다.)
오른쪽 끝의 소(牛)의 몸으로 뿔(角)을 가지고 있는 얼굴은 다른 데서도 이따금 이 모양으로 나타나는 하신(神) 아케로스에 틀림이 없다. 중앙에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은이 부조를 봉헌받은 케피소스일 게다. 그 앞에 이와 거의 겹쳐 있으 왼쪽을 향하여 오른쪽 다리를 들고 있는 것은, 그의 분신(分身) 즉 이것도 케피소스라고 보는 해석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 까닭은 이에 맞서서 조그마한 비례로 이에 상대하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의 교육을 케피소스에게 의탁하려고 기원하는 봉납자 크세노 크라티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밖의 인물에 대해서는 지금껏 결정적인 해명은 되어 있지 않다. 아무튼 이 부조는 파르테논 프리이즈의 여운(餘韻)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아테네와 그 외항(外港) 피레우스의 중간쯤에 있는 팔레론의 게피소스 강가(河畔)의 성역(聖域)에서 나온 양면 부조(兩面浮彫)이다. 1.50m 정도의 모 기둥(角柱) 위에 놓여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미술관에서도 그만한 높이의 받침대 위에 놓여 있다. 그 당시의 다른 묘비(墓碑)의 윗부분(頂部)과 닮은 게이블 형(形) 아래쪽 긴 네모의 양면(兩面)에 부조(浮彫)된 진귀(珍貴)한 봉납 비(奉納碑)이다. 그 한쪽 면(面)의 게이블의 가느다란 아래 구석에 헤르메스와 님 파이에게 봉헌하는 각문(刻文)이 있다. 그러므로 그 글이 새겨진 면(面)이 앞면이고 여기에 도시(圖示)된 면(面)은 뒷면(裏面)인 것이다. 왼쪽을 향하여 위로 오르막길로 되어 있는 비탈길을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질주(疾走)하고 있다.
전차(戰車) 위에는 키톤 위에 히마티온을 걸친 여성이 오른손으로 마차(馬車) 앞에 세워 놓은 것을 꽉 쥐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바람에 나부끼는 의복을 붙잡으며 상반신을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 뒤에 왼손으로 그의 허리를 안고 있는 청년이 있다. 두 사람 위의 게이블 아래쪽에 각각 바실레, 에켈 로스라고 새겨져 있으며, 말 앞을 선도(先導)해 가는 인물 위에는 헤르메스라고 새겨져 있다. 에켈 로스는 앗티카의 헤로스(半神)이며 바실레는 여왕이란 뜻이다. 에켈 로스가 바실레
를 여왕으로 삼으려고 빼앗아 가는 광경일 게다. 채색의 빛깔이 희미해진 것을 없앤다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기둥머리(柱頭)와 게이블 사이에 주인공(主人公)인 쿠테시레오스와 그를 따르는 테아노의 이름이 조각되어 있다. 쿠테시레오스와 테아노는 부부이며, 앞서 있는 것이 테아노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부조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내에 앞서 간 남편과의 뗄 수 없는 연결일 게다. 양인은 손을 잡고 있지 않다.
쿠테시레오스는 깊은 구두를 신고 히마티온을 걸쳤으며, 양손을 깍지 끼고 아내를 응시하고 있다. 테아노는 남편보다 커다란 비례로 표현되었으며, 풍부한 머리를 폭넓은 천으로 묶고 커다란 귀고리를 달고 있다. 발은 비스듬히 놓인 발판에 편하게 올려져 있으나 상반신과 목은 똑바로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남편을 보지 않고 먼 곳을 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비례의 차이, 양인 사이의 넓은 공간, 이들은 두 사람이 다른 세계에 격리되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쿠테시레오스의 깍지 낀 손과, 중복되어 있는 발은 운명을 참고 견디는 양상을 표현한 것 같다.
그 격리로 인하여 양인은 한층 깊게 연결되는 듯하다. 이 묘비를 B.C. 5세기 말로 보는 설은 예부터 있었으나 동의하고 싶은 면도 있긴 하지만, 지금 기록한 점으로 봬서 아무래도 헤겠소(도판 58)와는 다르며, 여인 묘비(도판 64)와 자매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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