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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서 근세로 전환하는 르네상스 미술은 이탈리아의 상공업 도시 피렌체의 신흥 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일어났다.
재생을 뜻하는 것으로 르네상스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이를 문예 부흥으로 의역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15,16세기의 문화가 가지는 중요성이란 면에서,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성격의 재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을 중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을 발생하게 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오랫동안 교회와 봉건 제도 아래서 생활해 오던 중세 유럽의 사람들은 점차 지식이 풍부해지고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이 신장하여 감에 따라, 이때까지 무비판적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동양과의 교통이 열리며 촉진된 상업의 발달은 종래의 봉건성에서 탈피하여 일반 시민 계급의 발전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됨과 동시에 개인적 재능의 자유로운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여건이 마련되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생의 환희와 현실에 대한 풍요성, 즉 자연과 인간에 대한 개성 존중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한 중세 말기의 사람들은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이미 자유롭고 현실의 의의를 강조한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5세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중세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기운이 일기 시작한 것이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중세에 있어서 다른 유럽 지방과 달리 비교적 봉건 제도가 약했으며, 또한 그리스,로마가 번영을 누린 지역으로서 그 전통도 깊어 순수한 중세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였었다. 더욱이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과의 교통의 중계지가 되어 일찍부터 상업이 성했고 자유스러운 기운이 강했다. 또 고대의 전통과 문화를 간직해 오던 동로마 제국(비잔틴문화)이 이슬람교국의 침공을 받게 되면서 그 학자의 이탈리아 망명은 고대에 대한 연구의 계기가 되었고,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 현실 세계의 의의에 눈을 뜨는 속도가 빨랐다. 더욱이 일찍부터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자유와 자치의 정신에 눈뜬 피렌체가 그 중심이 되어, 이 새로운 기운은 순식간에 이탈리아 전역에 퍼졌다.
이상과 같은 중세의 현실 경시, 개성 무시에서 점차 자연과 인간, 그 자체에 눈을 떴고, 인간의 개성 존중과 자연과 현실의 환희를 노래하는 자유와 활기에 찬 중세 타파 운동은 미술을 위시해서 사회의 모든 분야에 나타나, 학문과 예술의 현저한 발달을 촉진하였고 오늘의 유럽 문화를 형성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들은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고대의 유물과 문헌에 배웠다. 르네상스라는 말이 고대 부활을 의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개는 미술의 세계에 있어서 14세기 초 지오토에 의해서 나타났으며, 15세기에 접어들면서는 피렌체를 중심으로 봄꽃이 일제히 피는 것처럼 눈부시게 전개되었다. 우선 건축에 브루넬레스키, 조각에 도나텔로, 기베르티, 회화에 마사치오를 들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성당에 뚜렷하게 나타난 고대 로마에의 동경, 도나텔로나 마사치오에서 볼 수 있는 엄격한 사실주의는 확실히 인간 부활과 고대 정신의 찬미가 아닐 수 없다. 이어서 회화의 세계에 뛰어난 천재들이 속출하였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개성의 존중에서 , 종래의 회화에서 볼 수 없었던 초상 예술이 현저하게 나타나 인간상의 이상적 표현을 가져왔다. 한편 종교화나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도 현실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생명을 표현하면서도 인간 자체의 전형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특히 보티첼리의 봄, 비너스의 탄생과 프란체스카의 시바 여왕의 십자가 예배 등은 이 시대 회화를 대표한다.
이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렌체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먼저 나타났으며, 북베네지아 지방에서도 파급되었다. 이들 베네지아파 작가 중 벨리니를 비롯하여, 특히 메시나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개척자 반 아이크 형제에 의해서 시작된 유화의 새로운 기법을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소개하였고, 그 후 회화 발전에도 큰 역활을 하였다. 이러한 르네상스 미술을 낳게 한 15세기 이탈리아는 오늘날과 같은 통일된 국가가 아니고 각기 도시마다 자유로운 정치와 권리를 가진 도시 국가였으며, 이러한 정치 형태가 르네상스 미술의 옹호자로서 성립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피렌체는 15세기 말에 정쟁과 특히 프랑스의 찰스 8세의 침입으로 메디치가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 문화의 중심지는 교황청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와 베네치아로 옮겨졌다.
사실 로마는 종교상의 중심지였고, 유서 깊은 고대 문화의 고도로서 그 면목을 유지하여 왔으나, 14세기 이래 교회 권력의 쇠퇴와 신흥 도시에서 일어난 휴머니즘의 발전은 로마를 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능한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에 와서 다시 로마가 문화의 중심으로 번영하게 되었으며, 한편 베네치아도 15세기 이래 상업과 항구도시로 그 면목을 유지하면서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말하자면 16세기 르네상스의 꽃은 특히 이 두 지역을 중심으로 찬란히 피었으며, 이러한 기운은 밀라노와 역시 피렌체가 전시대의 여명을 유지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면 이 시대의 미술 문화의 성격과 그 단편을 살펴보기로 하자, 15세기 르네상스가 이탈리아나 북유럽을 막론하고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의 희열을 그대로 구가한 것이라면, 16세기 르네상스의 미술은 특히 이탈리아에 있어서 인간 완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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