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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연도가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물화로서 이탈리아에서는 사상 처음 보인 것이라 하여, 어느 대작의 부분이라는 설도 있지만 1607 년에 이 작품이 현상태(現狀態)로 확인된 바 처음부터 틀림없는 독립된 작품이라 믿어진다. 특히 화면 전체 구도에 따라 본다 하여도 대작의 부분이라고 믿기 어렵다. 그것은 그림의 대각선과 좌우 대칭의 구도에서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카라밧지오는 일찍이 정물화를 많이 그렸고, 또 이 면에서 그가 화가의 길을 개척하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초기에 습득한 회화 미술은 정물 묘사였다. 따라서 이 그림은 그의 성숙기에 속하는 것이라 볼 때 독특한 그의 자연주의적인 사실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항상 보여 주듯이 대상의 특성, 또는 분위기와 생기 있는 빛과 채색의 관계에서 표출(表出)되고 있다.
또한 이 점이 이 정물화의 특색으로도 나타나 있다. 나뭇잎이 여러 과실에 달려 있는 상태에서 어떤 종류의 과실인지 확실하게 파악될 수 있으며, 자연 생태의 현상까지도 여기에 묘사되고 있다. 벌레 먹은 자국이 있는 사과와 잎사귀, 물방울이 아롱거리는 잎, 질감 나는 과실, 시든 가지와 잎, 이 모든 점은 정확하고 면밀한 관찰에 의하여 이루어진 묘사이다. 이 작품에서는 빛의 작용이 과실을 광택 있게 하고 실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대상을 보는 사람에게 다가서게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단조로운 배경의 밝은 색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그림을 카라밧지오의 최고(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로마시의 새로운 성당 건립은 17세기 초 즉, 작가가 생존하고 있을 때 이루어졌는데, 이 작품은 이 성당을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카라밧지오는 그 당시의 종교화가 관념적으로 흐르고 있고, 종교적인 감동이 공허하게 되고 있는 것에 반대하여, 현실적인 묘사에서 극적인 표현을 하고자 노력하였다. 따라서 종교적인 격정을 고양(高揚)시키기 위하여, 인물의 극적 표현에 노력을 집중하고 그 시대적 인물상을 사실적으로 다루었으며, 빛과 어둠의 대조로 장면을 실감 있게 나타내었다.
장면은 크리스트의 유해를 매장하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 주고 있다.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요한은 각기 비통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 심야의 매장이 몇 사람의 참여로 더욱 극적인 양상으로 강조되고 있다. 여기에는 의식적인 면이나 종교적인 신비성이 전혀 없고, 검소한 일반 서민의 죽음과 그 매장 광경만이 보이고 있다.
이상적인 유형의 종교화보다도 현실적인 사실처럼 크리스트의 매장을 작가가 구상하였다는 데에 작품의 특색이 있다. 이 그림의 특색은 작가가 이 작품의 구상을 서민화(庶民化)하였다는 점에도 있겠지만, 죽음에 대한 상징성이 사자(死) 및 그 주변의 사람들의 애통(哀痛)보다도 화면에 크게 강조된 석판에 나타나 있게 하였다는 점에 있다.

 성화(聖畵)인 이 그림에 흙이 묻은 더러운 발을 보이고 있는 남자 순례자와 먼지와 때로 더러운 머릿수건의 여인 순례자를 그렸다는 비난을 작가는 받았다.
그러나 한편, 초라한 서민의 순박한 신앙심의 표상이라 보고 이 작품을 좋게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 작품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는 작가 카라밧지오의 거주지 근처에 살고 있던 가난한 과부의 딸이 성모의 모델로 되었다 하여 물의가 있었다.
이 작품은 전설적이거나 이상적인 내용과 양상으로 빠지기 쉬운 종교화가 아니고, 간결한 정신과 종교적 신앙심을 표상하고 있다. 여기의 성모자상이나 남녀 순례자의 모습은 현실의 소박한 서민상으로 되어 있고, 이들의 자세 또한 자연스러우며, 꾸밈새 없는 모습이다. 멀리서 온 순례자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기적의 마리아상인 것이다. 이 그림의 소박한 인물상과 자연스러운 그 자세는 작가의 리얼리즘을 솔직하게 시사하는 것이며, 종교적인 신비성을 인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종교적 속성 또는 장식 등이 배제된 간결한 내용으로 되어 있고, 순박한 인간적인 정의 교류(交流)가 성모자와 순례자 사이에 흐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카라바지오의 명암 표출 기법은 여기서 최대한으로 발휘되어 인물의 형태가 부상(浮上)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그림의 소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으로 그림의 주제는 성서에 기술된 다윗의 생애에서 이야기되는 내용이다.
카라밧지오는 로마의 지피오네 보르게제 추기경(樞機卿)을 위하여 이 그림을 제작하였다
하며, 이 그림에서 젊은 다윗은 상반 신상으로 되어 거인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머리카락을 잡아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은 소년의 모습이고, 들고 있는 머리는 카라밧지오 자신의 얼굴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이러한 장면의 도상(圖像)은 1400 년대부터 보여진 작품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 도나텔로나 베록키오는 조각으로 작품을 하였고, 또한 미켈란젤로도 이 소재의 작품을 한 바 있다. 이 모든 작품들의 공통된 점은 다윗의 늠름한 모습이 그 특색으로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카라밧지오의 이 작품은 다윗이 슬픈 표정으로 골리앗의 잘라진 머리를 보고 있다는 것에 이색적인 면이 지적된다.
이 면을 두고 사람들은 다윗이 자기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한 상태의 표정이라 보고 우의적인 뜻을 이 그림에 주고 있다. 하여튼 카라밧지오는 여기서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을 이 전설적인 종교적 일화에 표현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다윗의 어린 모습과 실감에 가까운 표정, 그리고 골리앗의 사색이 된 머리 등은 명암법에 따라 표현된 기법으로 더욱 사실성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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