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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의 화가’란 이름은 보스턴에 있는 크라테르의 목인(牧人)을 쫓는 팬의 그림(그 반대 면(面)에는 아르테미스와 아쿠타 이온이 그려져 있다.)에서 유래한다.
B.C. 480년경부터 세기 반쯤(약 30년간)까지 활동한 도화가(陶畫家)로서, 전부 100 종이 넘는 현존(現存)하는 유품이 거의 그의 손에 의한 것이다.
위대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독자적, 창의적인 연구로써 강한 표현력을 지닌 도화가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으리라.
이것은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한 펠리케(암포라와 같은 용도의 그릇)이다. 헤라클레스는 헤스페리데스의 사과를 구하러 이집트에 갔었다.
당시 이집트에는 포세이돈의 아들 부시리스가 군림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대단한 폭군으로 지나가는 외국인을 잡아 제우스의 제단에 제물로 제공하였다.
헤라클레스도 잡혀서 제단에 끌려 가다가 묶였던 끈을 자르고 왕은 물론, 그 자식들과 신하까지 살해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펠리케의 모양에 적합한 삼각형 구도로서, 이국인(異國人)의 표현에도 신경을 써서 그린 그림이다. 이 화가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피스 토크 제노스의 화가'란 이름은 슈베 에린에 있는 이름 높은 ‘헤라클레스와 리노스'의 그림이 있는 찻잔 모양의 술잔의 도공명(陶工名) 피스 토크 제노스에서 유래한다. 이곳 이외에는 한 번도 서명하지 않았던 이 도화가(陶畫家)는, 도공(陶工) 에우프로니오스나메가 클래스가 만든 그릇에도 그림을 그렸었다(이 에우프로니오스는 물론 B.C. 6세기 말의 대에우프로니오스가 아니라, 다른 젊은 동명이인의 작가이다). 즐겨 흰 바탕에 채묘(彩描)하였으며, 이 그릇 이외에도 런던, 베를린 등의 박물관에 이와 같이 흰 바탕에 채묘한 킬 릭스가 있다. 섬세한 필적으로 청색, 노란색, 갈색, 보라색 등의 색채를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행히도 잘 남아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피스 토크 제노스의 화가’의 예술성을 확실히 엿볼 수 있다.
눈(眼)이 프로우필(側面像)로 그려져 있는 것도 주의할 점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된 것으로, 없어진 부분이 많지만, 대체적인 구도와 뛰어난 솜씨는 알고도 남음이 있다. 프로스(의복의 일종)를 입은 여성이 오른쪽을 향하여 서 있으며, 오른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다.
이 옷은 거의 투명하여 인체의 선이 보이고 있다. 그의 앞에 두 발을 천으로 싼 부인이 정면을 향하여 서서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밑으로 내리고, 왼손에는 공양의 바구니를 안고 있다. 이 여성의 옷도 투명으로 되어 있다.
얇게 녹인 윤택한 선은 노랑에 가까운 갈색으로, 새하얀 흰 바탕 위를 흘러가듯 달리고 있다.
그 확실하고 우아한 선, 깊은 상념을 지닌 비장한 얼굴의 표정, 겨우 3 필(筆)로 그려진 눈(眼), 점묘로 표현한 짤막한 머리털, 이 모든 것이 뚜렷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세기 중반부터 파르테논 시대에 걸쳐서, 그리스의 도기 사상(陶器史上) 특히 백지(白地) 레키 토스에 있어서 가장 의미 깊은 것은 '아킬레우스의 화가'의 작품이다. 이 사람은 수많은 백지 레키 토스화(畵) 가운데 한 차례도 묘(墓)를 그리지 않았다. 항상 실내(室內)인 듯한 공간 속에 부인과 시녀, 병사(兵士)와 처(妻) 등과 같이 두 사람만을 그린다. 그리고 화장(化粧), 외출 등 흔히 평상적인 사항의 묘사를 보이고 있다. 깊은 바다의 푸른색을 생각하게 하는 청동 바탕에 나풀거리며 춤추는 마에 나 데스(마이나스)의 모습이 은색으로 눈부시게 보인다. 한 손에 막대를 들고 탬버린을 치면서 춤추는 그의 자태에는 격심한 운동감이 충만하며, 눈을 감고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그 얼굴에는 관능의 도취와도 같은 일종의 황홀감마저 감돈다.
디자인은 선각(線刻)으로 나타내고 있으나, 선각(刻)의 선 자체에 은상감(銀象嵌)되어 있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전체를 얇은 은의 층으로 만들어 그 위에 선각(線刻)을 하였다.
이 때문에 선은 상감 기술의 제약을 받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억양을 가지며 주제의 분방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예리한 각선과 굵고 유연한 각선을 교묘하게 사용하며, 풍만한 나체와 그것을 둘러싼 얇은 의복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도화(陶畫)의 모티프로서는, 그 화려한 자태가 애호되어 B.C. 6세기 이후 많은 병(壺)이나 잔()에 그 모습이 단독으로 혹은 떼를 이루어 그려져 있다.
이 거울을 만든 곳은 코린트라고 한다. 현존하는 이런 종류의 낡은 거울로는 에트루리아에서 만든 것이 많으며, 그리스 본토의 제품은 극히 희귀한데, 그런 의미에서도 귀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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