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미술의 시작에는 조토(Giotto, 1266~1337)가 있다. 그는 미술의 혀를 풀어준 사람이다. 그가 그린 것은 모두 말을 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은 체험이 된다. 그는 인간 감성의 폭넓은 틀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성서 이야기와 성인(聖人)들의 전설을 들려주고, 어디서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건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건의 핵심이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고, 장면들은 실제로도 아마 그랬을 거라는 인상을 풍기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조토는 종교적인 이야기들을 해석하고, 친근한 세부사항들을 첨가하는 정감 어린 방식을 받아들였다. 당시 사람들은 성 프란체스코 선교사들과 시인들에게서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듣곤 하였다. 조토 작품이 갖는 본질적인 업적은 시적인 창안에 있지 않고 회화적인..
'고전적(klassisch)"이라는 말은 우리 귀에 어딘지 차갑게 들린다. 살아 있는 다채로운 세계를 벗어난 것, 따뜻한 붉은 피가 도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도식만이 존재하는 공기 없는 공간으로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든다. '고전 미술'이란 영원하나 죽은 것, 영원하나 낡은 것처럼 여겨진다. 학문의 열매나 학설의 산물이지 삶의 결실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에 반해 우리는 살아 있는 것, 현실적인 것, 잡을 수 있는 것을 무한히 갈망한다. 현대인이 어디서나 구하는 것은 흙냄새 물씬 풍기는 미술 이다. 우리 세대가 사랑하는 것은 15세기와 16세기가 아니다. 우리 세대는 현실적인 것에 대한 확고한 감각, 눈과 감각의 단순성을 사랑한다. 몇 가지 고대풍의 표현들은 덤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경탄하고 미소 짓..
아름다운 부인상은 여러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엘 그레코 와의 사이에 아들 엠마누엘(Emmanuel)을 두고 있는 부인 헤로니마 데 라스 구에바스(Heronima de Las Cuevas)라고 보는 견해도 있고, 또는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Pelipe; 1527~98년)의 왕녀 카탈리나 미카엘라(Catalina Micaella)라는 주장도 있으나, 모든 사정으로 보아 귀부인의 초상은 아니라는 설이다. 그러나, 신비스러운 매력을 보이는 이 젊은 여성의 초상은 조심스럽게 그려진 면에서나, 또는 그 차림새로 보아 평범한 여인상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여하튼 그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여인상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와서 톨레도에 정착하고 나서, 그의 작품 활동이 ..
제작 연도가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물화로서 이탈리아에서는 사상 처음 보인 것이라 하여, 어느 대작의 부분이라는 설도 있지만 1607 년에 이 작품이 현상태(現狀態)로 확인된 바 처음부터 틀림없는 독립된 작품이라 믿어진다. 특히 화면 전체 구도에 따라 본다 하여도 대작의 부분이라고 믿기 어렵다. 그것은 그림의 대각선과 좌우 대칭의 구도에서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카라밧지오는 일찍이 정물화를 많이 그렸고, 또 이 면에서 그가 화가의 길을 개척하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초기에 습득한 회화 미술은 정물 묘사였다. 따라서 이 그림은 그의 성숙기에 속하는 것이라 볼 때 독특한 그의 자연주의적인 사실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항상 보여 주듯이 대상의 특성, 또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