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의 초기 그림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많았던 것은 (우피치 미술관)를 위한 밑그림이. 이 작품은 1480년경 제작되었고, 다양한 대상들을 통해서 옛날 식으로 마음을 감동시킨다. 아직 여러 가지 것에 마음이 끌리 15세기의 특성을 볼 수 있지만, 그러나 주요 대상을 부각하는 방법에서 새로운 감각이 드러난다. 보티첼리와 기를란다요도 에서 사람들이 뺑 둘러싼 한가운데 성모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다. 보통 그럴 경우 성모는 중요하지 않게 보인다. 레오나르도가 처음으로 주요 주제를 두드러지게 만들 수 있었다. 강력하고 닫힌 무대 구실을 하는 외부 인물들이 가장자리로 밀려난 뒷날에도 중요한 모티프이다. 아주 독립적이고 가벼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성모와 그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 사이의 대조는 오직 레오나르..
후기의 발전은 이런 초기 작품들과 잘 맞지 않는다. 내면의 떨림이 사나운 외적인 움직임으로 바뀌고, 그림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진지하고 평온한 태도로 카르멜 수도원에서 마사초 제단을 완성했던 이 화가가 말년에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프레스코를 그린 사람임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외적인 장식이 무한히 풍부하였다. 보티첼리의 경우 암시만 되었던 요소, 곧 환상적이고 과도한 요소가 그에게서는 강렬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는 움직임을 향해 달려들어서 풍요로운 동작을 통해 화려한 모습을 보인다.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로마)의 은 바쿠스적 황홀경에 도취된 천사들의 모습이 가히 환희에 찬 장면으로 나타난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 단순한 불안에 빠져들어 거칠고 천박하게 된다. 성 필립보의 순교..
도나텔로에 맞서는 인물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나타난 베로키오(Vermochio. 1435∼1488)이다. 개인적인 위대함을 따지자면 도나텔로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이상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한 인물이었다. 15세기 중반 이후로 섬세함과 가냘픈 팔다리, 우아함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체는 우락부락한 특성을 잃어버리고 날씬해졌으며, 관절도 가늘어졌다. 위대하고 단순하던 선은 좀 더 작고 섬세한 움직임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정교한 조형물에서 기쁨을 얻었다. 극히 섬세하게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것까지 일일이 느꼈다. 사람들은 동작을 원했으며, 고요함과 닫힌 것이 아니라 긴장을 원했다. 손가락은 의도적인 우아함으로 펼쳐졌고, 신체를 틀거나 머리를 굽히는 형태들..
그는 우선 공간 문제를 완전히 정복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그림은 처음으로 통일된 시점(視點)을 정하고 구성되는 무대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인간, 나무, 집들이 각기 기하학적으로 거리를 추산할 수 있는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조토의 경우에는 아직 많은 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다. 그는 물체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을 충분히 계산하지 않고 머리 위에 머리를 그렸다. 뒤쪽의 건물도 불확실하게 흔들리는 배경 속으로 밀쳐져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인물들과 사실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 마사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림의 공간은 풍경의 마지막 선에 이르기까지 아주 분명하다. 그는 사람들의 머리 높이를 시점으로 잡았으며, 같은 위치의 무대 위에 선 인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