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는 움브리아 지방에서 성장하였다. 페루 지니 유파 가운데 그는 다른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감정이 풍부한 스승의 방식을 완전히 습득해서 바사리의 판단에 따르면 스승과 제자의 그림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라파엘로처럼 천재적인 제자가 스승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 경우는 두 번 다시없을 것이다. 베로키오의 에서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가 독창적인 특성으로 인해 즉석에서 눈에 띄고, 미켈란젤로의 소년 시절 작업은 다른 누구의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인 데 반해, 처음 시작할 무렵의 라파엘로는 페루 지니와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는 피렌체로 온다. 미켈란젤로가 젊은 시절의 위대한 업적을 모두 이룬 순간이었다. 그는
강력한 계곡의 물길처럼 수태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황폐하게도 만들면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현상은 이탈리아 미술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다. 저항할 수 없는 인상으로 모두를 함께 휘몰아 가면서 그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해방자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는 파괴자였다. 첫 순간부터 미켈란젤로는 이미 개성이 완성되었다. 이 개성의 일방성은 거의 공포스러울 정도이다. 그는 조각가로서, 그리고 오로지 조각가로서만 세계를 파악하였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확고한 형식이며, 인체만이 묘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여겼다. 사물의 다양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인류란 수많은 개체로 다양하게 구분되는 지상의 인간들이 아니라 하나의 종족, 승화된 종류의 강력한 종족이었다. 레오나르도의 기쁨과 나..
말고 루브르에서 볼 수 있는 레오나르도의 또 다른 그림인 는 관객의 주목을 덜 끈다. 그의 손으로 완성되지 않은 이 그림은 색채도 실패했고, 도안의 가치 또한 오늘날의 눈으로는 별다른 평가를 받지 못할뿐더러 거의 감지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시대(1501년) 피렌체에서는 단순한 판지 그림만으로도 벌써 엄청난 놀라움을 불러일으켜서 레오나르도의 새로운 기적의 작품을 구경하기 위해 아눈치아타 수도원으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몰려들었다. 이 주제는 전혀 생산성이 없었다. 옛날 화가들이 그린 우습게 한데 뒤엉킨 그림을 생각해보라. 세 인물이 각기 다른 사람의 무릎에 앉아서 점차 앞쪽으로 튀어나온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미건조하게 서로 뒤엉킨 모습이 극히 풍요로운 특성을 가진 그룹으로 변화되었다. 생기 없는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