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텔로에 맞서는 인물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나타난 베로키오(Vermochio. 1435∼1488)이다. 개인적인 위대함을 따지자면 도나텔로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이상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한 인물이었다. 15세기 중반 이후로 섬세함과 가냘픈 팔다리, 우아함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체는 우락부락한 특성을 잃어버리고 날씬해졌으며, 관절도 가늘어졌다. 위대하고 단순하던 선은 좀 더 작고 섬세한 움직임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정교한 조형물에서 기쁨을 얻었다. 극히 섬세하게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것까지 일일이 느꼈다. 사람들은 동작을 원했으며, 고요함과 닫힌 것이 아니라 긴장을 원했다. 손가락은 의도적인 우아함으로 펼쳐졌고, 신체를 틀거나 머리를 굽히는 형태들..
그는 우선 공간 문제를 완전히 정복해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그림은 처음으로 통일된 시점(視點)을 정하고 구성되는 무대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안에서 인간, 나무, 집들이 각기 기하학적으로 거리를 추산할 수 있는 독자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조토의 경우에는 아직 많은 것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다. 그는 물체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을 충분히 계산하지 않고 머리 위에 머리를 그렸다. 뒤쪽의 건물도 불확실하게 흔들리는 배경 속으로 밀쳐져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인물들과 사실적인 관계를 갖지 않았다. 마사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들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림의 공간은 풍경의 마지막 선에 이르기까지 아주 분명하다. 그는 사람들의 머리 높이를 시점으로 잡았으며, 같은 위치의 무대 위에 선 인물들..
이탈리아 미술의 시작에는 조토(Giotto, 1266~1337)가 있다. 그는 미술의 혀를 풀어준 사람이다. 그가 그린 것은 모두 말을 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은 체험이 된다. 그는 인간 감성의 폭넓은 틀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성서 이야기와 성인(聖人)들의 전설을 들려주고, 어디서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건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건의 핵심이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고, 장면들은 실제로도 아마 그랬을 거라는 인상을 풍기면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조토는 종교적인 이야기들을 해석하고, 친근한 세부사항들을 첨가하는 정감 어린 방식을 받아들였다. 당시 사람들은 성 프란체스코 선교사들과 시인들에게서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듣곤 하였다. 조토 작품이 갖는 본질적인 업적은 시적인 창안에 있지 않고 회화적인..
'고전적(klassisch)"이라는 말은 우리 귀에 어딘지 차갑게 들린다. 살아 있는 다채로운 세계를 벗어난 것, 따뜻한 붉은 피가 도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도식만이 존재하는 공기 없는 공간으로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든다. '고전 미술'이란 영원하나 죽은 것, 영원하나 낡은 것처럼 여겨진다. 학문의 열매나 학설의 산물이지 삶의 결실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그에 반해 우리는 살아 있는 것, 현실적인 것, 잡을 수 있는 것을 무한히 갈망한다. 현대인이 어디서나 구하는 것은 흙냄새 물씬 풍기는 미술 이다. 우리 세대가 사랑하는 것은 15세기와 16세기가 아니다. 우리 세대는 현실적인 것에 대한 확고한 감각, 눈과 감각의 단순성을 사랑한다. 몇 가지 고대풍의 표현들은 덤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경탄하고 미소 짓..